[기자의 눈]홍은택/「깜짝 人事」없는 미국

  • 입력 1999년 5월 19일 19시 21분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이 12일 갑자기 사임의사를 밝혀 세계가 술렁거렸지만 아직도 미국의 재무장관은 루빈이다. 루빈이 실제로 물러나는 것은 7월이다. 두달 뒤에 물러날 장관이 사임계획을 밝히고 후임자 로렌스 서머스가 두달의 여유를 두고 지명된 것이다.‘전격 경질’을 다반사처럼 경험하는 한국인으로서는 생소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느닷없이 ‘내각제 추진을 위해’ 사퇴한 장관도 있고 신임 장관이 방대한 부처 업무를 파악하고 일에 의욕을 보일 때쯤 교체된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97년 12월 외환위기 때 물러난 부총리가 후임자에게 ‘국제통화기금(IMF)행’에 대한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정책에 혼선을 빚고 국가 신뢰도가 상처를 입는 낭패를 보기도 했다.

미국에서 차관보급 이상 고위직은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장관을 손바닥 뒤집듯이 교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고위인사 교체에 여유를 두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인준절차가 없는 백악관 비서들도 두세달 전에 사임의사를 공표하고 대통령은 미리 후임자를 발표한다. 백악관의 어스킨 볼스 전 비서실장이나 마이크 매커리 전 대변인도 충분한 여유를 갖고 존 포데스타, 조 록하트에게 각각 자리를 넘겼다.

이 때문에 사임을 앞둔 고위 공무원들은 차차 업무에서 손을 떼고 후임자들은 단계적으로 업무를 인수하는 등 순조로운 교대가 이루어진다. 그 덕분에 후임자들은 취임 첫날부터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정치적 임명직들이 처음부터 부처업무를 소상히 파악해 관료를 통솔할 수 있는 것도 여유있는 인수인계 때문이다. 한국도 참고할 만한 미국 관료제도의 장점이다.

홍은택<워싱턴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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