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관/원점서 맴도는 정치개혁

  • 입력 1999년 5월 10일 19시 20분


『독일의 바이마르 의회가 구성된 1919년 이래 어느 나라 의회도 자주적이고 주도적인 개혁에 나선 일이 없다.』

계속 원점을 맴돌고 있는 정치권의 정치개혁 논의를 지켜본 한 정치학자의 말이다.

실제로 여야협상에 앞서 진행되고 있는 공동여당의 정치개혁 논의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지적처럼 정치개혁을 정치권에 맡겨서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일 수 밖에 없겠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를 오락가락해온 공동여당의 속내에서는 ‘야당을 흔들겠다’는 의도와 ‘내년 총선에서 한석이라도 더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 이상의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 협상의 상대인 야당이 사사건건 여당과 ‘반대로만’ 가려는 행태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정치개혁의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난이 빗발치자 여권이 부랴부랴 착수한 고비용 정치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 논의는 아예 원점을 맴도는 양상이다.

10일 국민회의 확대간부회의에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시사항으로 알려진 지구당 폐지문제에 대해 상당수 참석자들이 “현실적으로 지구당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심지어 이날 오전 소집된 개혁추진위원회는 참석자들의 지각으로 성원미달사태가 빚어져 18분 간이나 회의가 지연되기도 했다.

문제는 정치개혁이든 사회개혁이든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권층의 ‘자기희생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자기 살을 잘라내는 결연한 의지가 없이는 야당도 국민도 설득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여권이 지금처럼 개혁의 ‘명분’도 얻고 ‘실리’도 챙기려는 행태를 계속 보이는 한 정치개혁 논의는 “나는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하라”는 공허한 주장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동관(정치부)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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