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이시하라級」 일본

  • 입력 1999년 4월 22일 19시 39분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 미국 하버드대교수는 지금의 국제정치구도를 ‘일극―다극체제’로 본다. 하나의 초강대국 미국과 다수의 강대국들이 병존한다는 얘기다. 강대국은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우세한 힘을 행사하는 지역적 강대국’과 ‘지역적 강대국보다 힘은 약하지만 종종 그들과 갈등을 빚는 2차적 지역강국’으로 분류된다. 헌팅턴은 지역적 강대국으로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 중국과 잠재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일본, 인도, 이란, 브라질, 남아공과 나이지리아를 든다. 2차적 지역강국엔 영국, 우크라이나, 중국에 대응하는 일본, 일본에 대응하는 한국,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등이 꼽힌다.

▽지난 11일 일본 도쿄도지사에 당선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郎)가 요즘 중국과 격한 역사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그는 의원 시절에도 주장했던 ‘난징(南京)대학살 날조론’을 다시 들고나왔다. 중국측은 ‘반동적 역사관을 지닌 극단적 민족주의자’라고 반격했다. 그러자 이시하라는 중국을 ‘피투성이 공산정권’이라고 되받아친다.

▽난징대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은 ‘중일전쟁중 비전투원에 대한 살해 약탈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시하라는 이를 인정하기는커녕 학살이 날조됐다고 줄기차게 우긴다. 도쿄 유권자들은 바로 그 이시하라를 도지사로 뽑았다. 그것도 다른 후보들과 큰 표차로.

▽일본이 국제적으로 경제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억울해하는 일본인이 많다. 헌팅턴이 매긴 일본의 국제정치적 지위도 경제력보다 낮은 2류 강국이다. 이시하라 수준의 과거사 인식이 극복되기는커녕 선거에서 득표로 연결되는 현실과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무관한 것일까.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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