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역대 춘향]임권택감독 14번째 도전

  • 입력 1999년 3월 7일 19시 55분


김지미―최은희―조미령―홍세미―문희―장미희―?

‘성춘향’의 계보다. 1923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고 87년이 마지막이었다. 지금까지 13번 만들어진 것도 모자라 거장 임권택 감독이 4일 새 춘향을 선발하는 등 팔을 걷고 나섰다.

시대가 바뀌어 감에 따라 춘향의 이미지도 계속 달라졌다. 기생의 이미지가 강했던 최초의 춘향에서부터 청순하고 가련한 춘향(55년), 지조가 강한 현모양처(61년 ‘성춘향’)로 변했고 60년대 후반부터는 발랄하고 경쾌한 성격으로 바뀌어왔다.

이제 세기말,임권택 감독이 그리려 하는 춘향은 어떤 이미지일까.

“조선의 가부장 사회가 요구하는 열녀로서의 춘향의 이미지는 요즘 시대에 맞지 않아요. 그보다는 춘향의 순정이 이도령과 정신적, 육체적으로 깊이 함몰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시각에서 다뤄볼 겁니다. 좀 더 발전시키자면 신분 세습을 근간으로 한 봉건사회체제,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체제의 부당성에 맞서는 한 여성의 저항도 담아낼 생각입니다.”(임권택 감독)

영화로 만들어진 춘향전들이 죄다 새로울 것도 없는, 뻔한 영화일 것같지만 영화사 전공학자들은 “춘향전이야말로 한국 영화사의 축약판”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태웅 교수(한양대 영화학과)는 “춘향전은 한국영화가 침체에 빠졌을 때마다 만들어졌고 거의 대부분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영화가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왔다”고 설명했다.

조희문 교수(상명대 영화학과)도 “춘향전만큼 한국 영화의 전환적인 계기를 많이 마련해준 소재도 없다”고 강조했다.

춘향전 리메이크의 역사를 따라가보면 한국영화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우선, 23년 일본인의 손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춘향전’은 국내 최초의 흥행 영화다. 무성영화 9권정도 분량의 짧은 영화였지만 당시 이름을 날리던 장안 기생 한룡이 춘향 역을, 잘 생긴 인기 변사 김조성이 이도령 역을 맡아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12년 뒤인 35년에 만들어진 이명우 감독의 ‘춘향전’은 국내 최초의 발성 영화다. 무성 영화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55년 이규환 감독이 만든 ‘춘향전’은 한국전쟁 이후 상업영화가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춘향 역을 맡은 청순한 이미지의 배우 조미령의 인기에 힘입어 당시 서울에서만 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4·19 이듬해인 61년에는 춘향전 영화 두 편이 1주일 간격으로 동시에 개봉돼 ‘춘향전(戰)’이 벌어졌다. 홍성기 감독 김지미 신귀식 주연의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 최은희 김진규 주연의 ‘성춘향’. 두 영화 모두 컬러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대형 화면)로 만들어졌는데 이 역시 국내 최초였다.

결과는 ‘성춘향’의 압승. 고생끝의 낙을 바라는 관객들의 취향에 잘 부합한 반면 ‘춘향전’은 어두운 화면에 슬픈 정조가 너무 강해 흥행에 실패한 것.

강태웅 교수는 “당시 김지미가 연기한 다소 현대적이고 어두운 춘향보다 최은희가 연기한 원숙하고 지조가 강한 현모양처형 춘향이 관객들에게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성춘향’의 성공에 힘입어 60, 70년대에는 춘향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4편이나 쏟아져 나왔다.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진 ‘춘향전’가운데 71년 이성구 감독의 ‘춘향전’은 국내 처음으로 70㎜로 촬영한 영화. 한국영화에 대형 화면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희문 교수는 “춘향전은 지금까지 흥행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영화를 한 걸음 진전시키는 전환점을 여러 번 제공해왔다”며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달라진 춘향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 기대된다”고 했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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