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쿠르드族의 항거

  • 입력 1999년 2월 18일 19시 11분


나라 없는 소수민족 쿠르드인들의 항거가 유럽 중심부를 테러사태로 몰아넣고 있다. 터키정부가 특수부대를 동원해 쿠르드족 독립운동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을 체포하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유럽 각처에 흩어져 거주하는 쿠르드인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선 것만 보아도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염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울분을 이해할 수 있어도 테러는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쿠르드인 테러는 유럽 각국의 그리스 케냐 이스라엘 공관을 주요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오잘란이 케냐주재 그리스대사관에 피신해 있다 나온 직후 붙잡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오잘란 체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외신보도로 이스라엘도 쿠르드인들의 적개심을 샀다. 이스라엘은 유럽의 모든 공관을, 케냐는 세계 전지역의 34개 대사관을 잠정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때문에 쿠르드인들의 테러위협이 지구촌 전역에 확산된 실정이다. 미국은 오잘란사건에 관여한 바 없다고 해명했으나 테러 지도자가 체포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오잘란은 테러리스트이므로 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참여했다고 시인했다. 이때문에 미행정부도 해외의 미국인들에게 테러 경계령을 내렸다.

쿠르드 문제는 분리독립이든 자치권보장이든 또는 그밖에 제삼의 방법이든 관련 당사국간 협의를 통해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 쿠르드족 다수가 거주하는 터키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으로 공격대상이 된 나라들도 당사국인 셈이다. 쿠르드족은 모두 2천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며 그중 1천2백만명이 터키에 살고 있다. 이들은 1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측으로부터 영토할양을 약속받았으나 오스만터키가 분할되면서 열강들의 이해가 엇갈려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때문에 특히 유럽과 중동 등 국제사회의 도의적 책임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첨예하게 대립해 온 관계국보다는 국제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개입한 미국 등 관련국들의 입장이 조정역으로 더 중요하다. 쿠르드족의 요구에 강경책을 써온 터키정부가 협상을 완전 배제한 것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쿠르드족이 고유의 언어를 갖고 동질적 습속을 유지해 온 것을 볼 때 이들의 민족자결권은 그냥 억눌러서 해소될 일이 아니다. 보편적 인권보장이라는 측면에서도 문명국들이 원만한 해결책을 찾는 데 뜻을 모아야 한다.

쿠르드인들로서는 이번 항거를 독립운동이라고 하겠지만 국제사회에서 테러행위로 규정되는 것을 피할 길 없다. 그러나 생존권적 요구라고 생각하는 그들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피의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가 발벗고 나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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