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운니동 안방마님」故이현경여사의 삶

입력 1999-01-31 19:39수정 2009-09-2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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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4남2녀의 어머니’가 아닌 ‘한국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자녀교육에 성공했고 전통예법 궁중요리 한국고서화에 정통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 종로통에 마지막 남은 ‘대갓집 안방마님’으로서의 품위를 오롯이 지켜냈다. 가볍고 새로운 것이 대접받는 세상을 향해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고(故) 이현경(李賢卿)여사. 그가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경기 파주의 선산에 묻힌 28일 이후 서울 종로구 운니동 고택(古宅)은 ‘50년 안주인’을 잃은 슬픔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의 별채로 조선말기 건축양식이 살아있는 이 집은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주치의였던 고인의 남편 김승현(金承鉉·93년 작고)씨가 49년 구입했다. 그후로 이여사가 ‘쓸고 닦으며’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해와 서울시 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이여사의 성공적인 ‘자식농사’는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장남 영식(永軾·66)씨와 차남 영기(永琦·63)씨는 미국 버클리대와 미네소타대 의과대 교수로 재직중. 한국에 남아있는 3남 영무(永珷·57)씨는 국내 최대 로펌(법률회사)인 ‘김&장’의 대표변호사이고 막내 영욱(永旭·51)씨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지던 90년대초까지 고령에도 불구하고 늘 책을 가까이 했다. 머리맡에 영어소설 ‘제인 에어’를 놓아두었을 정도. 자녀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도 ‘See you, soon’이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두렵고도 따뜻한 존재였다.

13세때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 품에서 잠들었던 영욱씨의 회고.

“어머닌 제가 바이올린을 시작한 여섯살부터 장안의 유명 선생님들을 모셔다가 매일 세시간 이상씩 레슨을 받게 했어요. 꾀를 부리면 어김없이 회초리를 드셨죠. 유학을 떠나면서 ‘이젠 해방이구나’하는 생각이 앞서더라고요.”

자녀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양보’가 없던 어머니는 하지만 50세가 넘도록 해외를 돌아다니며 연주생활을 하는 막내가 안쓰러웠던 듯 종종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다.

한일합방후 왕족들이 거처하던 이왕직(李王稷)에서 궁중생활을 접했던 ‘운니동 마님’은 뛰어난 민간 외교관이었다. 레너드 번스타인 등 외국음악가와 김&장의 해외 고객들이 고택의 운치와 정갈한 음식솜씨에 매료돼 ‘원더풀’을 연발하곤 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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