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아우성아줌마」 남편 송세경씨

  • 입력 1999년 1월 17일 20시 17분


이 남자는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이었다. 이 남자를 위해 여자는 2년 동안이나 옥바라지를 했다. 이 남자 때문에 여자는 10여차례나 가출을 했다. 한번은 1년 이상 가출한 적도 있다.

송세경(宋世慶·47)씨. 지금은 ‘아우성(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을 위하여)’의 구성애(具聖愛·43)씨 남편으로 통한다. 하지만 “구성애는 구성애고 나는 나일 뿐”이라는 사람이다.

송씨는 부산에서 ‘만년 운동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5년 넘게 부산시청 시보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지금도 부산지역 운동권의 ‘배후’에는 항상 그가 있다. 80년대 초 국가보안법 집시법 범인은닉 등 7가지 죄목으로 징역을 살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내가 환갑이 되기 전에 징역을 한두번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아직도 가슴에 뜨거운 불길이 살아있고 말에도 독기(毒氣)가 철철 넘친다.

그는 전형적인 ‘부산 싸나이’. 스스로 “성질이 급하고 욕 잘하는 기분파”라고 말한다. 우회적인 표현이라곤 전혀 할 줄 모르는 직선적인 태도는 부인 못지않다. 솔직 담백하고 화통한 사람이다.

송씨는 성에 대해서는 흔한 음담패설조차 한마디 할 줄 모른다. 누구보다 보수적인 ‘남자’다. 과거 20여년 동안 많은 독재자와 싸워온 사람이지만 가정에서는 그가 독재자다.

“여자는 아무래도 사회성이 부족하고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단순하죠. 가사노동의 가치가 어떠느니 하지만 그건 또다른 허위의식의 발로 아니겠소.”

그도 물론 “이론적으로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바쁜 아내를 둔 탓에 집안일은 물론 외아들 광복이(중학교 2년)의 도시락까지 챙겨주는 것을 보면 여성에 대한 그의 ‘험담’은 다소 과장된 구석이 없지 않다. 부인 구씨는 “말이 험해서 그렇지 항상 정을 주고 사는 사람”이라고 감싼다.

송씨는 구성애의 ‘아우성 교육’에 대해서도 다소 시큰둥하다.

“우리 사회의 편견의 벽을 깨는 의미있는 작업의 하나로 생각하지만 그 정도까지 요란해야 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저 한순간의 신드롬 정도로 여기죠.”

특히 구씨가 강연 때마다 인용하는 가족 얘기 때문에 그는 광복이와 함께 ‘구성애 신드롬’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몇차례 가족회의까지 열었지만 “참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같잖죠. 나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써먹는 게…. 하지만 보다 좋은 일을 위해서 내가 다소 이용되는 것을 어쩌겠소. 그저 참고 말아야지.”

송씨는 김해 농사꾼의 아들. 서울내기 목사님집 딸 구씨와 만난 것은 79년 여름. 서울대 농대 원예과를 졸업한 뒤 부산에 내려와 농민운동을 하고 있던 송씨는 당시 연세대 간호학과 학생으로 농촌활동에 참여한 구씨와 금세 눈이 맞았다. ‘상록수’의 박동혁과 채영신처럼.송씨가 농대에 들어간 것은 농촌의 문제가 ‘기술이 없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제도와 사회구조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고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고교 재학시절까지 매 한번 맞아본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던 그는 순식간에 골수 운동권이 됐다. 초보 운동권이었던 구씨는 첫 눈에 송씨의 지도력에 반해버려 몇개월새 ‘평생 동지’이자 ‘추종자’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의 부부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송씨는 부마항쟁의 배후조종자로 검거돼 2년이나 옥고를 치렀고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구씨의 ‘가출’도 잦아졌다.

광복이가 막 돌을 넘겼을까. 구씨는 노동운동을 위해 남편과 아들을 팽개치고 서울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하려고 야반도주했다. 송씨는 이혼까지 생각했지만 그동안 자신 때문에 고생을 했던 아내였기에 용서했다.

너무나 솔직한 두 사람이기에 ‘마찰’도 잦다. 구씨는 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부딪쳐 깨지면서 오늘의 부부가 됐죠. 하지만 이제 남편도 좀더 세련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송씨의 반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끝까지 아끼고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성애가 갑자기 뜨니까 자기 주제를 모르고 오만해진 측면이 있어요.”

술상을 앞에 두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두 사람의 화끈한 언쟁…. 너무 솔직한 부부의 말다툼이었고 그래서 너무나 건강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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