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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2월 20일 20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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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월남전 패배로 한반도에서도 긴장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75년 6월20일. 당시 미국방장관 제임스 슐레진저는 극히 이례적인 발표를 했다. 한국에 미군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돼 있음을 인정한 것. 그의 발표는 핵무기의 존재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미국의 핵정책 NCND와 배치되는 것이었다. NCND가 이처럼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부정돼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때의 얘기부터 먼저 들었다.
“그렇습니다. 당시 나의 행동은 NCND정책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월남전 패배 속에서 북한의 김일성(金日成)은 남한도 월남처럼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병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김일성의 기를 꺾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주한미군이 전술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사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입니다. 핵억지력을 확인한 것이지요.”
―핵문제가 나왔으니까 얘기입니다만 당시 닉슨 독트린의 여파 속에서 박정희(朴正熙)정부의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팽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만약 그때 미정부가 제동을 걸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는 한국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고 믿었습니다. 나는 박대통령을 직접 만나 ‘만약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미국과의 관계에 유감스러운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이에 반대하는 미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이후 한국정부는 핵무기 개발에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역시 핵이 문제입니다. 북한이 평북 금창리에 핵 관련 시설을 짓고 있다는 의혹이 대두되면서 또 한차례의 핵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금창리시설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아 위기가 고조된다면 클린턴정부가 이라크처럼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할 것으로 보는지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은 이라크의 경우처럼 크지는 않습니다.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미국의 공격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북한은 공격을 받으면 서울을 향해 미사일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북한을 쉽게 공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격에 앞서 미국은 먼저 한국정부와 상의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겠지요.”
―미의회는 금창리시설에 대한 의혹이 풀리지 않을 경우 당장 내년 6월부터 대북 중유비용이 지급되지 못하도록 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설령 핵시설이라고 해도 공사가 끝나려면 4,5년은 족히 걸리는 데 너무 지나친 대응이 아닌가요. 일부러 ‘위기상황’으로 몰아간다는 지적까지 있습니다.
“중유비용은 적은 액수의 돈입니다. 사소한 액수의 돈 때문에 제네바 합의를 깰 수는 없습니다. 의회로서는 그만큼 단호한 의지를 보이겠다는 뜻일 겁니다.”
―94년 핵위기 당시 미국방부는 북한 영변시설에 대한 폭격까지도 하나의 대안으로 검토했습니다. 폭격이 적절한 대안 중의 하나였다고 보는지요.
“(검토한 것 자체는) 적절했습니다.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은 북한의 핵개발을 멈추는 것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지지하는 것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했는데 그는 전자를 택했습니다. 그가 만약 후자를 택했다면 IAEA의 사찰을 강행하기 위해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클린턴대통령은 다시 이라크를 공격했습니다. 그의 결정이 옳다고 봅니까. 이번 공격이 북한에도 일종의 경고로 작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담 후세인이 유엔결의안을 계속 위반해 왔다는 점에서 미국의 행동은 정당했습니다. 이번 공격을 통해 미국은 필요할 때면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미국에 대한 신뢰도도 높여주었습니다. 김정일(金正日)의 태도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91년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습니다만 일각에서는 이처럼 북핵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선언은 성급했다는 주장도 합니다만….
“노대통령의 비핵화선언은 칭송받을 일이지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이 한국을 (핵우산으로) 보호하는 한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5년 키신저 미국무장관이 처음으로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4자회담을 제의했지만 한국정부는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4자회담은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중심틀이 돼 있습니다.
“4자회담이 열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정부가 남한을 미국의 점령지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니까요. 남북이 서로를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문제를 풀어나가는 첫걸음으로 소중한 출발입니다.”
―4자회담 역시 주한미군문제를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 때문에 아직은 큰 진전이 없습니다만….
“북한의 전쟁위협이 존재하는 한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합니다. 주한미군문제를 (4자회담에서)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미군을 계속 주둔시킨다는 미국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어야 합니다.”
―김대중(金大中)정부의 햇볕정책을 어떻게 봅니까.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군사적으로 한국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한국은 차치하더라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한다면 이런 식의 행동이 도움이 되지는 않을텐데요.
“미정부는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속 지지하고 한미간에 공조도 잘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신사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나라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정책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 유수의 금융회사인 리만 브러더스사의 자문역으로서 김대중정부의 경제개혁, 특히 빅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과 같은 ‘아시아적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만….
“한국의 새 정부는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습니다. 빅딜은 한국정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재벌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한국은 저축률이 높고 장기외채에 대한 의존율이 낮다는 점에서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와는 입장이 다릅니다. 한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문제가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 놀 필요가 없습니다.한국은 심지어 미구에 위기가 닥칠 중국과도 다릅니다.”
〈정리〓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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