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갈등탐구]양창순/이유없는 「바가지」는 없다

입력 1998-12-09 18:55수정 2009-09-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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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와 친구들을 워낙 좋아하는 김과장. 덕분에 1주일에 서너 번씩 귀가가 늦어 아내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남자가 사회생활하면서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려 한두 잔 걸치고 늦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도무지 아내는 그걸 못 참는 겁니다. 어쩌다 잊어버리는 법도 없이 매번 바가지를 긁어댄다구요.”

아내의 바가지에 진력이 나 일찍 귀가하면 만사가 풀리겠건만 김과장은 그럴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다. 잔소리는 잔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많은 남편들이 늦은 귀가에 대한 아내의 불평을 바가지나 잔소리쯤으로 치부하고 싶어한다. 단지 술먹고 늦게 다니니까 괴롭히고 싶어서 또는 뭔가 의심스러워 꼬투리를 잡으려 한다고 여기는 것. 정말 아내가 왜 그런 불평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시도해 본 남편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들의 불평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피해의식. 결혼하기 전에는 두 사람은 분명 동등한 관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남편은 바깥 일을 핑계로 술마시고 늦게 다니면서도 당당하다. 혼자 낮동안 아이들 데리고 종종걸음치며 집안에서만 맴도는 것이 억울하다. 혼자만 잘 사는(?)것 같은 남편에 대한 질투심도 한몫 거든다.

두 번째 이유는 여성 특유의 호기심. 남편이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울렸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남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의심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럴 때도 없지 않겠지만 사실은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심리를 이해하는 남편이라면 아내의 웬만한 불평쯤은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양창순(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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