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 새 틀짜기

  • 입력 1998년 12월 7일 19시 36분


청와대주재 정재계 간담회에서 합의한 5대재벌 구조조정 방안은 가히 혁신적이다. 30년 가까이 재벌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논란이 끝없이 계속됐지만 이번처럼 재벌의 구조와 내부 기능까지 광범위하게 개혁의 대상이 됐던 적은 없다. 재벌 위주의 우리 경제가 어떤 형태로든 새롭게 탈바꿈하는 계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이제 실천만이 남아 있다.

5대재벌 개혁은 외환위기 당시 재벌이 환란의 중요한 원인제공자로 지목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후 1년만에 우리 경제사상 초유의 재벌개혁 실천계획서가 완성된 셈이다. 합의문대로라면 5대 재벌은 앞으로 3,4개 주력업종 위주의 소그룹으로 나누어져 사실상 1인 지배하의 선단식 경영이 사라진다. 외양적 형태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체질과 경영구조도 획기적으로 바뀐다. 그룹 총수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무형의 사재(私財)가 부실기업의 정리에 투입되는 보기 드문 장면도 연출될 전망이다.

그동안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통해 이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5대 재벌의 개혁은 향후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걸쳐 변화를 예고한다. 이론대로라면 시중자금의 편중현상이 사라져 유망 중소기업에 경영에너지가 원활히 공급될 것이다. 재벌이 차지하고 있던 부문에서 중소기업의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재벌간 과당경쟁이 사라지면 국가경제 전체의 효율성도 올라갈 수 있다. 재벌이 이번 조치로 대외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 경제의 건전성도 개선될 것이다.

이번 합의가 온전히 실천에 옮겨지려면 정부와 재벌들의 해야 할 일이 지금까지 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우선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들 수 있다. 빅딜에서 발생될 손실에 대한 분담도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개혁에 급급한 나머지 중장기적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재벌개편 후의 산업공백 문제나 관련 협력업체들의 무더기 퇴장 대비책 등이 그것이다. 기업들의 설득력 있는 주장이 간과된 것도 앞으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재벌개혁은 과정이며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그런데도 사후문제에 대해서는 준비가 소홀하다는 느낌이다.

본란이 누차 지적했지만 관치경제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번 합의도출까지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정부의 역할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도 거의 국유화한 채권은행들을 통해 정부가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마디로 자유시장 원리에 배치되는 일이 지금처럼 수시로 일어나면 큰 문제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혼란을 막으려면 지혜와 절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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