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 (33)

  • 입력 1998년 11월 25일 19시 17분


반정 ⑩

두환의 부대에는 그와 이름이 같은 선임하사가 하나 있었다. 어찌나 악질이었는지 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병들은 벌벌 떨었다. 누군가의 너스레에 따르면 오줌을 누다가도 장두환의 장, 에서 벌써 치솟던 오줌발이 순간정지하고 두, 에서 고드름처럼 얼었다가 환에서 툭툭 끊어져 떨어질 정도였다.

그 부대에 배속받아 온 첫날 두환은 자기 이름만 듣고도 내무반 모두가 긴장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두환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에 대한 사전정보가 있었던 건가? 라고. 그러나 18동인의 소문이 대한민국 육군에까지 알려졌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진짜 이유를 알게 된 두환은 갑자기 “뭐? 장두환이가 또 있어?”라고 커다란 소리로 말했다가 소심한 고참들을 놀라게 한 죄로 뺨을 맞았다.

두환의 앞날은 뻔했다. 고참들은 분명 선임하사에 대한 분풀이로 시도때도 없이 이 새끼 장두환, 저 새끼 장두환 하며 두환에게 욕을 해댈 게 분명했다. 얼차려를 시킬 때도 “장두환! 얼, 차, 얼, 차. 똑바로 못해, 장두환?”하며 신나할 것이다. 기합이 한 번이라도 더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선임하사 장두환 쪽에서도 자기 이름을 똥개처럼 불리게 만든 두환을 가만둘 리 없었다. 사실은 그게 더 두려운 일이었다.

그 이름에 특허출원을 냈을 리도 없고, 또 그를 낳은 것이나 이름을 지은 것이나 모두 부모가 저지른 짓이니 두환 자신의 죄는 아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이치가 닿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두환의 내무반은 두환에게 예정돼 있는 비극을 겉으로는 애도했지만 한편 은근히 기다렸다. 그러느라고 약간 흥분돼 있었다.

그러나 내무반의 기대는 어긋났다. 선임하사 장두환 앞에 도열해서 경례를 붙이고 관등 성명을 대던 신병 중에 선임하사와 이름이 같은 놈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두환은 순간 제 이름을 바꿨다. “넷! 신고합니다, 일병 장, 두, 팔!” 하고 씩씩하게 외쳤던 것이다. 선임하사는 두환의 이름표를 쓰윽 내려다보더니 그 순간부터 두환을 귀여워하게 되었다. 귀여움을 받는 대신 두환은 고참이 된 뒤까지도 두팔이, 혹은 그것을 응용한 두칠이나 한팔이 따위로 함부로 불렸다.

선임하사는 종종 두환에게 사모님을 위해 시장을 본다든지 하는 특수임무를 맡겼다. 두환으로서는 도시로 나가 바람을 쐴 기회였다. 어느날 두환은 이리로 나갔다가 역 앞 극장에서 하춘화 쇼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가진 것을 모두 바쳐 표를 사서 들어갔고 얼마 후 역사(驛舍)가 폭발하는 굉음을 들었다.

두환은 하춘화를 자신이 구할 수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주일이라는 코미디언이 나서지 않았다면 말이다. 대신 그는 광장으로 뛰쳐나와 구급대와 함께 환자를 수송했다. 그 일은 지방신문의 낙수란에 한 줄로 기록되었다. ‘시민들도 사고수습을 도왔으며 한 휴가병의 활약은 특히 눈부셨다’그렇게 해서 두환은 신문에 눈부신 모습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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