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김성용/『당신고생알면서 짜증내 미안하오』

  • 입력 1998년 11월 24일 19시 24분


여보 미안하오. 집을 나서며 혼자 입에 담아본 말이오. 낙엽이 쌓인 회사 주변 산책로를 걸으며 다시한번 “여보 미안해”를 독백하오. 회사 부도로 얇아진 월급 봉투….

당신이 직장을 갖고 있고 만혼에 애들마저 늦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우린 작년과 올해 연년생 아들을 갖게 됐소.

산후조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당신. 낮에는 큰애를 돌봐야 하고, 밤에는 둘째녀석의 보챔에 시달리는 당신. 남편 아침준비에 충혈된 눈으로 냉장고 문을 여는 당신. 낮에는 좀 잤나 싶어 전화해 보면 잠자는 것 포기했다며 그냥 웃는 당신.

그러나 어제 나는 당신이 고생하는 걸 잘 알면서도 불쑥 당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소. 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 집에서 책 한권 볼 수 없는게 마치 당신과 연년생 아들 녀석들 탓이라는 생각에 그만 짜증을 냈소.

여보. 어려운 때일수록 가족의 사랑과 후원이 최고라는 걸 느낍니다. 당신의 고생을 꼭 보상해 주리란 각오도 한답니다. 당신에게 못된 소리를 해댄 남편이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소.

당신 산후조리 끝나고 복직할 때 예쁜 옷 한벌 해주리다.

김성용(서울 강남구 도곡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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