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개혁 왜 안되나

동아일보 입력 1998-11-23 19:14수정 2009-09-2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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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문제로 안팎이 시끄럽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한 외국정상들에 이어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도 방한중 지지부진한 재벌개혁을 비판했다. 내부적으로는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연일 재벌들의 소극적 자세를 성토하고 있다. 1년내 끌어 온 문제인데 한해가 다 저물어가는 마당에 왜 또다시 거론되어야 하는지 그 자체가 안타깝다.

재벌개혁이 미진한 1차적 책임은 재벌 자신에 있다. 경제위기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가 실물부문의 과잉투자에서 비롯됐고 재벌들이 그 주역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재벌은 스스로 개혁에 앞장섰어야 했다. 연초에 이른바 5대약속을 다짐할 때만 해도 국민은 재벌이 자율적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차일피일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재벌의 선단식 경영형태나 지배구조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이름도 낯선 몇몇 부실계열사만 정리하는 데 그쳐 개혁은 시늉에 그쳤다는 인상을 준다.

경제살리기의 핵심은 재벌개혁에 있으며 재벌개혁은 과다한 차입구조의 개선과 계열사간 부당한 연결고리를 끊을 때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재벌들은 핵심을 피한 채 비판의 눈길만 모면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일부 재벌의 분사화 노력 등 긍정적 움직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뼈를 깎는 자기개혁 노력은 엿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재벌이 기존의 경영속성에 안주하려 한다면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재벌 자신에도 이롭지 않다. 분위기로 보더라도 이번만큼은 재벌들이 개혁여론을 쉽게 피해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정부의 재벌정책에도 문제가 없는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오락가락 하다가 위에서 한마디 하면 일제히 포격을 가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빅딜정책 가운데 설득력이 약한 부문을 계속 고집하는 것도 문제다. 세계경기가 한창 살아나는 반도체의 경우가 그렇다. 정부 부처간에 경쟁적으로 펼쳐지는 재벌압박도 명분에 집착한다는 느낌을 준다. 재벌의 주장에는 귀를 막고 밀어붙이기식으로 대응하다보면 정부와 재벌간에 갈등이 노출되기 쉽다. 잘못을 추궁하더라도 최소한 사업의욕을 잃지 않도록 하는 범위 안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정부의 재벌정책은 법규와 제도에 근거해서 집행되는 것이 좋다. 또 정책 자체가 제대로 세워졌는지에 대한 중간점검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좋든 싫든 재벌이 우리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실적으로 막중하다. 이들이 국가경제 재건에 동참하면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정교하고 미래지향적인 재벌정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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