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재봉/APEC는 소중한 「다자간 채널」

입력 1998-11-19 19:47수정 2009-09-2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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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양일간의 정상회의를 끝으로 폐막된 제10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는 예년과는 달리 꽤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치러진 느낌이다.

평소 같으면 열번째 회의라는 의미에서 축제 분위기를 가질 법도 하건만 동아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 때문에 APEC가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자유화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였고 경제기술협력에서도 회원국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한 성과가 도출되지 못하였다.

게다가 개최국 말레이시아의 내정문제에서 비롯된 잡음, 이라크 사태로 인한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불참, 심지어 비공식 만찬장에서의 수하르토 전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대한 풍자극 공연에 이르기까지 APEC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요소들마저도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 無用論은 성급한 견해 ▼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APEC 무용론’은 지나치게 성급한 견해가 아닌가 싶다. 원래 경제협력에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열살짜리 어린아이에 불과한 APEC에 눈에 번쩍 뜨일만한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사회 문화 역사적 동질성을 가진 유럽국가들도 40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꾸준한 경제 협력을 추진한 결과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였다.

하물며 구성국가의 이질성을 지닌 APEC는 경제협력추진에 더 긴 세월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이번에 무산된 것으로 보도된 분야별 조기자유화만 하더라도 첨예한 이해대립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무산되었다기보다 회원국간의 이해득실 조정에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올바르다. 그리고 구체적인 성과가 결여되었다는 경제기술협력에 대한 비판도 당장에 기술이전이 될 것이라는 지나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APEC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매우 소중한 다자간 채널이다. IMF사태라는 초유의 위기상황을 맞은 우리나라는 이번 APEC회의에서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 개방 프로그램을 진솔하게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IMF에 의존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국가신인도 저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홍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자간 정상회의는 그 주제에 관계없이 세계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의 구조조정 노력을 설명함으로써 큰 돈 들이지 않고 홍보활동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번에 APEC의 초창기부터 자임해 온 중간자적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역내 개발도상국들의 자구노력을 강조하는 한편 역내 선진국들의 지원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균형잡힌 견해를 제시하였다.

투기성 단기자본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자본이동의 투명성을 높이고 건전성을 감독하는 방안을 제시하여 선진국과 개도국 양측으로부터 비교적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APEC 투자박람회를 서울에 유치함으로써 외국인 직접투자유치를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일단 구체적인 협력 방안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만하다. 특히 투자박람회가 계획된 내년 6월은 투자절차 간소화, 투자인센티브 확대, 원스톱서비스의 실시 등을 골자로 하는 외국인 투자촉진법이 시행된 지 반년 정도 지난 시점이 되므로 우리의 법제 개편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는지,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외국인 투자자의 반응은 어떠한지 등을 점검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한국역할 폭넓은 지지 ▼

APEC가 전통적으로 추진해온 무역투자 자유화가 보다 구체화 되지 못하고 원칙적인 수준의 언급에만 그친 점은 매우 아쉬운 느낌을 준다. 금융위기 극복이 너무 큰 주제로 부각되는 바람에 자유화는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하지만 각국이 모두 보호주의적 경향을 갖게 된다면 경기회복에 그만큼 더 시간이 걸리게 되므로 APEC의 자유화는 지속적으로, 또한 구체적으로 추진되어야만 한다.

IMF 체제가 우리 스스로만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듯 그 해법도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만 찾아낼 수는 없다. 따라서 비록 협의기구에 불과하다고 비판받는 APEC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를 잘 활용하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체제를 다져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국내의 구조조정 노력과 결합될 때 우리의 경제위기 극복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노재봉(대외경제정책硏 기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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