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소년과 인권

  • 입력 1998년 10월 23일 19시 27분


새 청소년헌장이 내일 선포된다. 90년 제정된 종전의 청소년헌장이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기성세대의 역할을 강조하는 선에 그쳤다면 새 헌장은 청소년을 독립된 인격체로 격상시키고 그에 상응한 기본적인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소년인권의 측면에서 괄목할 진전이자 인식의 전환을 이룬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새 헌장은 구체적으로 청소년들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자기의사를 표현할 권리’ ‘자유롭게 활동할 권리’ 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둘러보면 우리나라는 청소년인권에 관한 한 ‘박토(薄土)’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입시지옥’속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은 과중한 학습부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밤늦게까지 학교와 학원을 맴돌거나 사회와 가정에서 버림받은 청소년들에게 ‘권리’문제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가부장 중심의 가족체제에 익숙해온 우리 부모들이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부속물처럼 인식하는 풍조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얼마전 큰 파문을 일으킨 어린이 손가락 절단사건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부장문화에 바탕을 둔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제는 청소년을 인격체로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정착되어야 한다.

아동학대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가운데 학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72%나 됐다고 한다. 미국 25%, 일본 35%와 비교할 때 배이상 높은 수치다. 더구나 IMF체제 이후 생활고를 이유로 화풀이식 아동학대행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우려를 더해 준다.

국내 법에도 청소년인권을 보호하는 조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소년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주기에 미흡한 실정이다. 예를 들면 아동학대행위에 대한 신고의무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지만 아직도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모 이혼에 따른 친권자지정이나 입양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의견이 무시되는 사례도 대부분이다.

새 헌장을 만든 문화관광부는 청소년 인권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함께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소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년 인권이 근본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일이다. 새 헌장이 선언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청소년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 각계각층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