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원호/중남미 금융위기의 파장

입력 1998-09-23 19:07수정 2009-09-25 00:54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중남미 경제는 지난해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등 주요 4개국이 평균 성장률 6.4%, 인플레 7%를 기록한데다 역내 총 외국인 직접투자가 5백억달러에 달하는 등 4반세기만에 가장 안정된 고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아시아경제의 침체로 야기된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은 원자재 수출 경제형인 중남미의 교역 조건을 악화시켰고 달러화에 연동된 고정환율제는 현지통화의 고평가를 낳아 경상적자폭을 더욱 넓히고 말았다.

원자재 감산이나 증산 어느 쪽도 자살행위일 뿐 해결책이 못되었다. 상당수 국가가 취한 평가절하조치도 효력이 없었고 특히 10월과 12월 대선을 앞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발목을 잡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8월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신흥경제권의 신뢰성에 치명타를 가해 투자자금이 중남미를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다.

▼ 원자재값 하락이 원인 ▼

중남미 경제에서 4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브라질은 환율방어에 달러를 쏟아부어 7월말 7백억달러에 달하던 외환보유고가 현재 5백억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방어에 힘이 부쳤던 에콰도르 콜롬비아 칠레는 환율변동폭 확대형식으로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도미노식 위기감에 휩싸인 중남미 국가가 취한 선택은 첫째, 해외자금 회유를 위한 대폭적인 금리인상과 재정긴축이었다. 그러나 기준 금리 50%가 잘 설명해주고 있는 중남미국가들의 자금경색 상황은 성장둔화와 국채부담 가중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아시아위기 이후 대거 유입되고 있는 아시아 상품들에 대해 수입신고제를 도입하거나 긴급 수입제한 및 반덤핑조치를 준비하고 대신 지역협정을 통한 역내교역을 촉진하고 있다. 셋째,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을 상대로 사전예방 차원의 긴급융자를 교섭중이다.

우리에게 중남미 상황은 더 이상 ‘먼 산의 불’이 아니다. 그들의 금리인상 조치는 우리의 해외차입비용을 증가시켜 장기적으로 외환위기 도래 위험을 높인다. 수입제한 움직임이나 성장둔화, 역내로의 무역전환은 동남아위기 이후 중남미를 대체시장으로 삼아온 우리의 수출전략에 차질을 빚게 하고 있다. 중남미시장은 연간 45억달러의 최대 흑자시장이라 우리가 받는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또 20억달러에 달하는 국내 금융기관의 중남미 여신도 유사시 상당한 손실이 예상된다.

그러나 당사국들 못지않게 중남미 위기 타개를 위해 골몰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중남미지역 수출이 자국 총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20%)을 차지하고 있고 또 막대한 자금이 물려 있다. 미국이 지난해 아시아의 위기에 냉정하게 대처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최근 국제금융질서 안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미국의 ‘마지막 제방’이 무너지려 하기 때문이다.

중남미는 다른 신흥경제권과는 달리 지난 10여년간 정치 사회적 어려움을 감내하고 IMF의 요구를 수용하며 ‘자본주의 혁명’을 치른 터라 미국식 자본주의가 갖는 부담 또한 크다.

만일 현재와 같은 자금이탈이 계속돼 단기채무만 1천억달러가 넘는 브라질 경제가 부도날 경우 최대 자금동원능력이 2백50억달러도 안되는 IMF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온다. 위기는 중남미 전역으로 단숨에 번지고 중남미에 투자하거나 자금을 대출한 미국 스페인 독일계 기업과 은행이 부실해져 세계금융공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 세계금융공항 올 수도 ▼

90년대 들어 발행된 중남미 채권은 신흥시장 전체 물량의 45%인 2천억달러에 달하며 중남미 총외채는 6천8백70억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10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IMF―세계은행 연차총회를 전후해 미국은 다른 선진국들을 설득해 더 이상의 자금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인하 공조와 함께 중남미 특별융자기금 마련에 진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황의 긴박성 만큼 선진국의 대응이 신속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세계금융혼란이 ‘브라질 불끄기’에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금융질서 논의가 가속화될 것이고 이 경우 IMF와의 오랜 협상 경험으로 비판 의식이 높은 중남미의 시각이 주목받게 될 것이다. 마침 개발도상권의 이해를 반영해온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브라질 재무장관 출신 루벵 리쿠페로 사무총장은 최근 연례보고서를 통해 유사시 각국은 긴급 자본규제 조치를 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도 우리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김원호<대외경제정책연 연구위원>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