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칼럼]권병현/대홍수 이긴 중국의 저력

입력 1998-09-06 19:35수정 2009-09-25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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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인간이 70여일동안 벌인 필사의 공방전.

실로 그것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백년일우(百年一遇)의 양쯔(揚子)강 대홍수와 3백년만의 쑹화(松花)강 유역 물난리는 2억2천3백만명의 이재민, 3천여명의 사망자, 2천1백20만㏊의 농경지 침수, 5백여만채의 가옥 파손 등 2백억달러 이상의 직접적인 경제 손실을 남기고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4천2백년전 우왕(禹王)의 전설적인 치수이래 수천번의 홍수와 수백번의 치수사업이 있었다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인간이 자연과 대결한 적이 있었을까. 양쯔강의 8차례의 물마루(洪峰)와 쑹화강의 3차례의 물마루. 엄청난 높이의 물마루가 대도시와 인구밀집지역을 가로지르는 두줄기 강둑 사이로 넘실거리며 지나갈 때마다 “저 물마루를 막아라”하는 인간의 절규와 함성이 터졌다.

장쩌민(江澤民)주석은 ‘인민생명안전제일(人民生命安全第一)”을 제1성(聲)으로 러시아 일본과의 정상회담도 무기 연기한 채 홍수현장을 누비며 진두지휘했고 주룽지(朱鎔基)총리는 “재산을 잃으면 나라가 다시 줄 수 있지만 사람의 생명은 다시 줄 수 없다”고 눈물지으며 홍수방지를 호소했다. 또한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제방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지앤츠(堅持) 지앤츠 짜이지앤츠(再堅持)”를 외치던 원자바오(溫家寶)부총리의 비장한 모습, 매일 30여만명의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부대가 엮어낸 ‘인간띠 제방’과 ‘육탄제방’…. 고귀한 생명과 재산을 구하려는 살신성인의 노력앞에 거대한 홍수도 그 위세가 꺾여가고 있었다.

홍수가 넘실거리는 강둑에 서서 ‘항홍(抗洪)’을 독전하는 지도자들의 모습과 ‘인간띠 제방’을 엮어낸 수십만 인민해방군의 모습은 마치 삼국지를 재현한 듯 무수한 병사와 장수들이 등장한 전장을 연상케 했다.

며칠전부터 중국 언론들은 ‘항홍’대신 ‘승홍(勝洪)’을 쓰고 있다. 즉 홍수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뜻이다. 2억명 이상의 이재민과 2백억달러 이상의 피해에 무슨 승리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승리는 자연에 대항한 인간들의 승리다. 또한 54년 홍수때 3만3천여명의 인명을 잃은데 비해 이번에는 사망자를 3천여명으로 줄였다는 인본주의적 의미의 승리다.

중국에는 지금 많은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중국이 세계 역사의 중앙무대로 다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변화들이다. 이번 홍수 전쟁에서 나타난 중국 지도자와 인민 사이의 상호 신뢰와 위기극복 의지도 그 한 예다.

지금 중국에서는 수재(水災)의 비통 속에 어린 소녀가 저금통을 털고 팔순 노인이 정성어린 수재의연금을 보내는 등 수해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홍수로 아들을 잃은 노부모도 “몰유판법(沒有辦法·이 방법밖에 없지 않느냐)”이라며 홍수방지 사업과 수재의연금 모금에 동참하고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사상 최대의 홍수를 이겨낸 중국인의 모습에서 나는 어두운 역사속에 긴 잠을 자다 깨어나 21세기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중국을 본다.

권병현<주 중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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