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박정숙/췌장암 투병 오빠께

  • 입력 1998년 8월 25일 19시 44분


오빠. 어려서 시골에 살 때 부르던 노래 ‘오빠생각’을 불러봅니다. 하늘도 슬퍼하듯 비는 쉼없이 내리고 가슴 한편에 쌓아두었던 아픈 기억들이 떠오르는군요. 92년 오월 그날도 비가 왔지요. 딸 이슬이가 아기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갔을 때 오빠는 긴 편지를 제게 보내 허무한 마음을 달랬지요.

며칠전 오빠가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을 원망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착한 분에게. 10년 넘게 간질환으로 죽을 고비도 몇번 넘기면서 하나님께 장남이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서원기도했었던 오빠. 대학 4학년이 된 큰 조카를 보며 새삼스레 하나님과 했다는 약속이 야속하게 여겨집니다.

절대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 오빠의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네요. 지금도 눈물이 흐르니까요.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마흔 일곱의 나이는 너무나 짧아요. 세상여행 한번 제대로 못하고 아무도 모르는 긴 여행을 준비하는 오빠에게 전 아무것도 챙겨드릴게 없어 더욱 가슴이 미어집니다.

다만 나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손 한번 내밀어주라고 큰 슬픔이 밀려올 때면 긴 글을 써보라는 오빠의 권유를 늘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박 정 숙(서울 중랑구 상봉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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