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27)

  • 입력 1998년 8월 18일 19시 41분


제2장 달의 잠행 ③

나는 병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집안에 숨어서 지냈다. 폐쇄 공포증의 반대 용어는 무엇일까. 광장 공포증? 아마도 나는 그런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수를 데리러 학교에 갈 때에만 간신히 집에서 나갔다.

차가 선 곳은 부희네 집 앞이었다. 차는 어느 순간 공기가 쓰윽 빠져나가는 듯 공허해지더니 거짓말처럼 서버렸다. 여기까지야, 하고 마지막 숨을 쉰 것도 같았다. 키를 뽑아 다시 넣어 돌려보았다. 헛것을 만지는 듯한 기묘한 느낌. 갑자기 모든 현실감이 사라져버렸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으니 모퉁이 길에서 집채만한 트럭이 나타났다. 늙고 왜소한 운전 기사가 굳이 고개를 빼고 차안에 갇힌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내려서 차를 밀어 길 한쪽으로 붙였다. 영문을 모르니 막막하기만 했다. 길에 서서 한없이 기다리면 결국 하루에 세 번씩 들어오는 차를 타고 마을 아랫길까지는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지만, 차에 관한 한 대책이 없다. 그렇게 되면 수를 데리러 가지는 못할 것이었다.

나는 부희네 집 앞으로 가 멍하니 서 있었다. 흡사 번화한 거리에서 아이를 잃었을 때 같은 괴괴함이 엄습했다. 부희의 집은 길 아래 수몰 마을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비어 있다. 담도 허물어진 길가 외딴집. 세 개의 방문과 부엌문은 꼭 닫혔고 마루에는 가족 사진이 든 액자가 거울 위에 그대로 걸려 있다. 마루의 선반에는 대로 짠 바구니 몇 개도 포개져 있으며 마루 아래 축담에는 농사 지을 때 신었을 긴 장화가 넘어져 있고 여자 슬리퍼와 구두 한 짝도 뒹굴었다.

그리고 부엌문 곁 벽엔 노트 만한 거울이, 그 곁엔 탈색된 보라색 빗과 칫솔 네 개가 나란하게 걸려 있다. 장독간에는 옹기들도 그대로 놓여 있어서 무너진 담만 아니라면, 가족이 모두 친척 결혼식에라도 갔다가 돌아올 집 같다. 그러나 부희는 지금 감옥에 있다. 무기형을 언도받았다니, 아마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돌아온다 해도 이미 무너질 집이지만….

나는 바싹 다가가 방문 위에 걸린 사진 액자를 들여다보았다. 액자의 테와 유리엔 먼지와 파리똥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기 돌 사진, 회갑상 앞에서 찍은 사진, 관광을 가서 여러 사람이 비스듬히 서서 찍은 사진, 남자의 증명사진, 누군가의 결혼식 사진, 그런 사진들 속에서 액자 가운데에 꽃다발을 든 남자아이와 붉은 코트를 입고 은은하게 웃는 여자의 세워진 사진이 돋보였다.

마름모꼴의 얼굴에 눈썹이 초사흘 달처럼 휘어졌고 눈망울이 커다랗고 입이 조그마한 귀염성 있는 얼굴. 아마 부희인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독부라고 한다.

정부와 함께 시아버지를 낫으로 찍어 죽이고, 남편을 꼬여 오히려 남편을 친부살해죄로 가두어 넣은 여자.

석분이 깔린 넓은 길에는 간간이 승용차가 들어오고 나갈 뿐이었다. 난감하게 서 있던 나는 다가오는 흰색 왜건을 향해 갑자기 손을 내저었다. 차 안의 남자와 나의 눈이 속도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날카롭게 부딪쳤다. 차는 나를 조금 지나 석분 쓸리는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남자가 내려서더니 다가왔다. 키가 크고 가느다란 남자였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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