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이야기/19일]궂은비에 잃어버린 여름

  • 입력 1998년 8월 18일 19시 41분


전국이 흐리거나 한때 비. 말복 지나 처서로 가는 빗길, 천지가 온통 ‘비릿하다’. 시월의 능금, 그 사과알에 찰찰 넘치는 햇살이거나, 제 가시에 찔려 노란 피를 흘리는 탱자나무 열매이거나…, 슬쩍 계절을 ‘가불’해 보는 망중한. 허나 여름을 허투루 보지말라.

비구름이 깔리는 석양녘, 숨은 듯 숨지는 않은 듯, 낮게 낮게 몸을 엎드리는 포도밭(智). 삶이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주는 속리산(慈).그리고, 쓰러진 아카시아 나무, 그 나무를 십년째 몸으로 받아내는 떡깔나무, 두 나무가 기대어선 곡선, 아카시아의 죽음과 떡깔나무의 삶이 함께 피워내는 숲의 향기(仁). 아, 사람도 사람을 저처럼 오래 껴안을 수 있는가….(오세영·나희덕)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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