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창혁/외교통상부의 언론성토

  • 입력 1998년 8월 10일 19시 27분


외교통상부는 요즘 마치 ‘언론과의 전쟁’이라도 선포한 듯한 분위기다.

장관은 브리핑 도중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언론의 무책임성’을 비난하고 해외공관의 공사까지 신문기고문을 통해 “직업외교관들을 모독하지 말라”고 언성을 높인다. 전에 없던 일이다.

직접적인 이유는 박정수(朴定洙)전외통부장관의 경질 배경에 대한 보도과정에서 모 신문(7일자)이 ‘정치인 출신인 박전장관의 경질은 직업외교관인 외통부 간부들이 박전장관에게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기사를 실었기 때문.

홍순영(洪淳瑛)장관은 7일 기자실에서 한―러관계 수습방안을 설명하다 갑자기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그런 3류소설같은 기사로 우리 직업외교관들을 모욕하느냐”며 흥분했다. 그는 “언론과 외교관은 국정의 동반자”라고 강조하고 언론이 이렇게 나오면 우리도 언론에 영합하는 ‘거지외교’는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10일에는 정달호(鄭達鎬)주오스트리아공사가 나섰다. 그는 한 신문기고문을 통해 ‘근거 없는 보도로 직업외교관들을 비하시키는 것은 우리의 집단적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하고 한―러사태에 대해서도 ‘외국신문들은 사건을 간략히 보도하는데 우리 언론들은 내부사정을 미주알 고주알 캐내 사태를 증폭시켰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언론에 대한 외통부의 불만은 가능한 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한가지 첨언하고 싶은 점은 한―러사태가 진행되는 지난 한달 동안 외통부는 단 한 차례도 언론에 대해 진지하게 사건의 본질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은폐와 책임 떠넘기기, 그리고 무능은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김창혁<정치부>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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