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67)

  • 입력 1998년 7월 10일 19시 11분


―니가 뭐 소냐? 일 하려구 시집가게?”

어머니는 봉순이 언니의 반응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봉순이 언니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니 자기네야 두번째라구 하지만 우리는 첫번째 아니냐. 농사일 끝내놓구 살기 편할 때 천천히 사람을 데려가든지 해야지….

―아줌니 걱정 마세요. 지가 가서 잘 할께유. 하나 있는 딸내미두 어찌나 안됐던지 때꾸정 물이 졸졸 흐르는 게…. 지 맴이”

―니 마음이 벌써 그리로 다 가버린 모양인데. 내가 뭐라고는 안하겠다만은 이게 잘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구나”

처녀를 데려가는 홀아비인 처지인데 그쪽집에서 너무 서두르는 기색에 어머니는 좀 불편한 모양이었지만, 어머니로서도 이쪽에 하자가 있으니 더 뻗댈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혹여 옛일 가지고 트집이나 안잡아야 할텐데. 봉순이 너 무슨 일이 있어두, 지난 일에 대해서는 잡아떼야 한다. 죽어도 입을 열면 안돼. 그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너하구 그 사람 둘 다 위하는 거야, 알았지?”

어머니는 걱정스레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쪽의 서두름과 봉순이 언니의 달뜸으로 인해 단 몇 달만에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형부라는 사람은 주말마다 서울로 왔고, 우리집에도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봉순이 언니는 남자를 처음보는 소녀처럼 부끄러워 했고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러는 동안 혼인 날짜가 다가왔다. 벚꽃이 한창 피어나던 어느 토요일, 아버지의 차를 타고 어머니와 나와 봉순이 언니는 경기도 남양읍의 한 예식장으로 갔다. 어제까지 화창하던 날씨가 꾸물꾸물해지더니 점심무렵부터는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님이 오시네. 가뭄 끝에 반가운 비로구나. 봉순이 잘 살겠네…. 봉순아 내가 어린 널 데려다가 키운다고 키웠지만 니 맘에 맺힌 거 많겠지. 다 잊고 옛말하면서 잘 살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참고, 시댁 식구들한테 잘하고, 남편 알기를 하늘로 떠받들면 좋은 끝이 있을 거다. 니가 그래도 심성 하나는 고운 아이니까.

어머니는 말을 하다 말고 눈물을 훔쳐냈다. 흰 망사의 베일로 얼굴을 살짝 가린 채 서울의 미장원에서 드레스를 빌려입고 화장까지 마친 언니는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사연많은 사람들, 사연많은 사람들이라 그렇게 눈물이 흔했을 것이다.

―울기는 왜 우니? 이 좋은 날

―아줌니 은혜 잊지 않을 게요.

―은혜는 무슨 은혜니? 가서 잘 살면 됐지.

어머니는 봉순이 언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부끄러운 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고개를 숙인 언니의 모습은 새하얀 드레스 때문이었을까 화사해보였다. 그랬다. 아마도 봉순이 언니 일생중에서 가장 화사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하필 비가 다른 날 다 놔두고 그날 내리기 시작한 것만 뺀다면. 그것은 징조였을까, 어머니는 훗날, 그 비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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