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헌주/문화부 「제논의 물대기」

  • 입력 1998년 7월 5일 19시 42분


지난주 청와대에서 열린 문화관광부의 업무보고는 예정된 30분을 넘겨 한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신낙균(申樂均)장관이 문화 체육현장에 많이 참석해 국민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자 흔쾌히 수락했다. 문화에 대한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지만 장관이하 간부들은 업무보고를 마치고 곧바로 가진 부처 출입기자단과의 회견장에서 대통령이 강조했던 중요한 대목을 문화관광부입장에서 해석해 전달하는 인상이 역력했다.

첫째, 산하기관의 민영화. 청와대가 전한 김대통령의 말은 “산하기관은 과감하게 민영화하고 그 이전이라도 책임경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 기자들이 민영화에 대한 기본입장을 묻자 문화관광부 관료들은 대통령이 강조한 대목은 언급조차 않은 채 “경영혁신은 하겠지만 민영화가 능사가 아니지 않느냐”고 답변했다.

사실 이런 문화관광부의 자세는 이날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기획예산위원회가 26개 정부부처산하 96개 기관의 업무를 내년까지 민간에 이양하거나 위탁한다고 밝히자 가장 앞장서서 관련단체와 한목소리로 ‘불가론’을 외친 것이 문화관광부였다.

둘째, 국산영화 의무상영제도. 김대통령은 “지원을 해도 왜 세계적인 영화작품이 나오지 않는가. 국산영화 의무상영제는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도 문화관광부는 “오해가 없기 바란다. 국산영화를 연간 최소 1백20일 의무상영하는 현 제도는 유지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지시를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해버린 인상이 짙다.

요즈음 문화관광부의 분위기를 보면 ‘개혁 무풍지대’란 생각도 든다.

조헌주<문화부>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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