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61)

  • 입력 1998년 7월 3일 19시 30분


―봉순아, 여자는 그저 시집가서 남편 사랑받구 애들 낳구 그러구 사는 게 제일 인 거야. 짱이두 이제 클 거구 아줌마두 늙을 텐데, 너 꼬부랑 할머니 될 때까지 여기서 뭘할래? 막말루다 니가 천애 고아이면 피붙이라두 낳아두고 그걸로 울타리를 삼아야지.

―…….

―게다가 말 들어보니까, 사람이 신실하구 그렇게 양반일 수가 없다더라. 서른 셋이면 이제 남자나이 한창 아니니? 내가 널 안다만 넌 그저 나이 든 사람한테 가서 이쁘다, 이쁘다 소리듣구 살아야 돼. 게다가 시골이니 먹을 것 걱정 없을 거구.

땅도 조금 있단다. 나머지를 소작 부친다구 해두 그게 다 큰집 땅이라니, 영 경우없이 가난한 집은 아닐테구 말이다…. 어여 다녀와. 가서 정 맘에 안들믄 그냥 앉아 있다가 커피만 마시구 와라. 그러면 내가 더 말 안할께.

어머니는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억누르며 부드럽게 말했다.

―지는 시집 안갈래유. 안갈 건데 그 사람 뭐할라구 봐유? 올라오지 말라구 하믄 안될까요 아줌니?

―너 지금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도 아직도 못 알아듣는 거니?

어머니의 언성이 드디어 높아지기 시작했다.

―동네에 소문 다 나구 나서, 홀아비건 뭐건 안받아주면 그땐 처녀귀신될래? 막말루다 니가 젊은 총각한테 시집가서 첫날밤에 지난 일이 탄로라도 나믄 그때 어떻게 할래? 한번 시집갔다가 못살고 오면 그때 정말 끝이라는 거 몰라서 그러니, 그러길?

봉순이 언니는 시선을 떨구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미장원까지 가서 애써 한 화장이 얼룩덜룩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울긴 왜 우니? 이것아, 그러길래 왜 집을 뛰쳐나가서 왜 그 지경이 되어서 돌아와? 그래, 이 아줌마한테 거짓말까지 하고 그 건달놈 따라갔으면 그러면 죽을 때까지 거기서 같이 살든가 했어야지!

어머니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었다. 지난 초여름 봉순이 언니가 집을 나간 이래 그렇게 속상한 어머니의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봉순이 언니는 더 큰소리로 훌쩍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화가 난듯 휑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거즈손수건을 가지고 나와 봉순이 언니 곁에 앉아서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고만 울고 어여 가라. 약속해 논 거니까. 가서 정말 맘에 안들면 커피만 마시고 와. 그땐 아줌마가 아무말 안할께. 너 싫다는데 난들 어떻게 하겠니?

어머니는 심란한 표정으로 콧물을 휘잉 들이켰다.

더 버티기가 힘든 걸 알아차렸는지 봉순이 언니는 천천히 일어섰다. 한발자욱 떼려다 말고 봉순이 언니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저어 아줌니?

<글:공지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