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51)

  • 입력 1998년 6월 24일 07시 11분


―몇달째냐고 내가 묻잖니?

어머니가 봉순이 언니쪽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뭘유?

봉순이 언니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손등을 문지르는 그녀의 손길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내가 무슨 소릴 하는지 정말 니가 몰라서 나한테 묻는 거니?

―글쎄 뭘 갖구 그러시는지 지는 모르것어유. 지가 집 나간 거라믄 그러니께 오늘이 다섯달짼데….

그때 어머니의 손길이 숙인 봉순이 언니의 머리를 후려쳤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어깨까지 아무렇게나 자란 봉순이 언니의 머리카락이 얼굴 앞으로 흩어졌다. 손등을 문지르던 봉순이 언니의 손길이 아주 멎어 버렸다. 어머니가 봉순이 언니를 그것도 내 앞에서 때린 일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림책을 붙든 채로 그 자리에 굳어져 앉아 있었다. 봉순이 언니도 때린 어머니의 얼굴도 마분지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너 대체 왜 이러니 봉순아.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어? 니가 나한테 솔직히 이야기를 해야 내가 널 도와줘도 도와주지 이 맹추같은 것아. 너 정말 그렇게 밥통이니? 엉? 나한테까지 니가 이럴 거였으면 우리집엔 도로 왜 왔니? 왜 왔어? 내가 지난번부터 그렇게, 그것만은 지켜야 된다고 타일렀는데, 근데 이꼴로 돌아와서 뭐 왜 그러셔?… 너 이꼴을 하고 아무도 모를 줄 알고 동네를 걸어 온거니? 대체, 니가 정신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꿩새끼도 아니구 응?

어머니의 언성이 점점 더 높아지다가 이제 울먹이고 있었다. 엄마가 왜 저럴까 다이아반지라면 이제 다 밝혀진 일인데 싶었지만, 그랬지만, 어머니가 다그치고 있는 봉순이 언니의 몸이 유난히 불어 있었다는 게 짚였다. 아까 저녁을 먹으면서 영아 언니가, 봉순이 언니 왜 이렇게 살쪘어? 라고 말했을 때 어머니가 왜 그렇게 당황했는지, 나는 이제 알게 되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 사이가 되지 않아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비가 꽃씨를 옮기는 일이 아니듯, 사람은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아이를 뱃속에 있을 때 죽일 수도 있다는 것, 내가 보았던 주간지와 여성지의 ‘감동수기’ 들은 그렇게 아이를 가졌고 그래서 아이를 죽였던 여자들의 눈물로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해했다. 봉순이 언니는 아마 ‘미워도 다시 한번’ 의 문희같은 처지가 되었는가 보았다. 다만 봉순이 언니는 문희처럼 예쁘고 유명하지 않았고, 병식이라는 총각은 신영균처럼 듬직하지 않았을 뿐.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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