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48)

  • 입력 1998년 6월 19일 19시 42분


―잘했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흥분한 어머니의 설명이 어찌나 사실적이었던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였지만 지금도 그때 상상했던 광주의 산동네 전경과 그 조그만 판잣집 위, 상자보다 조금 큰 장독대 위 옥상에서 우리 형제들의 옷들이 펄럭이는 게 보이는 듯하니까.

아무튼 그때, 우리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다이아반지가 아니라 우리들의 옷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점에서 우리 형제의 가슴은 놀라 뛰었지만,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나는 미경이 언니의 심경을 얼른 이해할 것도 같았다. 넌 우리 넷째랑 닮았다며 처음으로 내 앞에서 환하게 웃던 그 모습. 왜 그 귀한 반지랑 은수저랑 다 놓아두고 우리 형제들의 옷 그것도 내 머리방울까지 훔쳐갔는지.

이 세상의 많은 덕목 중에서 특별히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던 어머니 아버지도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그 후 미경이 언니가 다시 서울로 와 가발 공장에 취직해서 신문지에 싼 돼지고기 반근을 들고 다시 찾아왔을 때도 어머니는 마다하지 않았고, 우리 형제들이 입다가 작아 못 입는 옷들을 모았다가 동생들 입히라며 주어 보내곤 했다. 그리고 그후에도 미경이 언니는 가끔 집에 내려가지 못하는 명절에 종합과자 선물세트를 들고 우리집에 찾아왔고, 어머니 아버지는 그녀가 시집을 갈 때 결혼식에 가서 부조도 했다.

어쨌든 그 해 가을이 그렇게 부산스레 가고 어머니는 구해야지, 구해야지 하면서도 쉽게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은 잘도 사람을 구해서 시집도 보내주고 하는데 이젠 아이 쓰기가 무섭구나, 어머니는 걸레로 툇마루를 훔치며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면 툇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적어준 노래를 흥얼거리던 기억,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어린 마음에도 내게 노래 한소절씩을 가르쳐 주는 어머니는 아름다워 보였다. 그럴 때 어머니는 세 아이를 가진 삼십대의 여인이 아니라, 뭐랄까 흰 모슬린 원피스를 입은 소녀같이 보였다.

그러다가 가끔은 아현시장에 따라가 시장 입구에서 파는 찐빵을 얻어먹기도 하고, 닭집에 가서 닭 아저씨가 닭 목 한가운데에 길고 날카로운 칼을 쑤욱 집어 넣고 죽이는 모습을 팥아이스케이크를 먹으며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 닭 비린내, 요란하게 푸드덕거리던 닭이 조용해지면 닭 아저씨는 닭을 꺼내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가 꺼내곤 했다. 그 곁엔 개고기를 파는 아낙들도 있었다.<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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