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검찰의 법원 비난

  • 입력 1998년 6월 19일 19시 42분


1948년 ‘법조프락치사건’에 대해 전주지법이 일부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당시 이우식(李愚軾)법원장의 사상을 의심했다. 검찰은 미군정청에 “좌익분자를 가볍게 처벌했으니 좌익혐의가 농후하다”며 이법원장을 고발했다. 군정청은 대법원에 이법원장을 징계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법원장 담화를 통해 “법원장을 고발, 재판에 간섭하려는 것은 사법부 모독”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사법사상 초유의 이 소동은 결말없이 끝났다. 이법원장은 그후 대법관까지 역임했다. 우리 사법사(司法史)는 어느 측면에선 법원과 검찰의 투쟁의 역사였다. 공안사범에 대한 잇따른 무죄판결에 반발해 검찰이 법관 2명에 대해 수뢰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비롯된 71년 사법파동은 그 절정이었다. 최근 영장실질심사제 운영, 의정부법조비리 수사를 둘러싼 갈등도 그런 투쟁의 역사로 볼 수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두 기관에 다시 긴장감이 돈다. 이번에도 검찰이 싸움을 걸었다. 의정부사건의 중심인 이모변호사에게 일부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법조비리 척결을 바라는 국민 여망을 저버린 것”이라는 공식입장을 발표, 법원을 공격했다. 법원이 그냥 있을 리 없다. 대법원은 법관들의 분노를 반영, “사법의 권위에 도전한 사법사상 유례없는 행위”라는 강도 높은 입장을 내놓았다.

▼검찰이 법률상 상소절차가 있음에도 ‘국민 여망’ 운운하는 정치적 표현으로 재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은 재판권 독립을 위협하는 개탄스러운 일이다. 검찰은 공개사과해야 마땅하다. 법조비리 척결이 아무리 중요해도 법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소모성 공방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검찰은 공소장으로, 법원은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금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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