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이야기/16일]빗방울 머금은 잿빛 하늘

  • 입력 1998년 6월 15일 19시 53분


똘배가 개울가에 자라는/숲속에선/누이의 방도 장마가 가시면 익어가는가/허나/인생의 장마의/추녀끝 물방울 소리가/아직도 메아리를 가지고 오지 못하는/팔월의 밤에/너의 방은 너무 정돈되어있더라/이런 밤에/나는 서울의 얼치기 양관(洋館) 속에서/골치를 앓는 여편네의 댓가지 빽 속에/조약돌이 들어있는/공간의 우연에 놀란다/누이야/너의 방은 언제나/너무도 정돈되어있다/입을 다문채/흰실에 매어달려있는 여주알의 곰보/창문 앞에 안치해놓은 당호박/평면을 사랑하는/코스모스/역시 평면을 사랑하는/킴 노박의 사진과/국내소설책들…/이런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누이야/이런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누이의 방)

코스모스와 ‘8월’은 아득한데 일찍 온 장마 속 김수영 제일(祭日). 오늘 날씨에 어울리는 쩍말없는 시.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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