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님비제소」 패소판결

  • 입력 1998년 6월 12일 19시 47분


쓰레기매립장 핵처리시설 등 공해나 혐오시설이 자기집 주변에 들어서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이른바 ‘님비현상’이다. 공동체 의식이 투철한 선진국에도 흔한, 어떻게 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때론 지역이기주의라고 해서 지탄의 대상이 된다. 입장을 바꿔 보면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님비현상이 특히 3년 전 지방자치 실시 이후 급증하는 추세인 것은 문제다.

▼님비현상의 근저에는 현대인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좋은 시설은 서로 가져오려는 ‘핌피현상’ 또한 님비와 정반대 현상이지만 이기주의를 모태로 한다는 점에서는 뿌리가 같다. 월드컵 주경기장 유치를 둘러싸고 불거진 서울과 인천의 신경전, 경부고속철도 노선과 지하역사 설치 여부에 대한 논란 등을 최근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서울고법은 장애인학교 설립과 국립공원 지정을 반대하는 해당지역 주민들과 행정기관간의 소송에서 주민들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님비에 대한 판결이 처음은 아니지만 공공의 이익을 다시 강조했다는 의미가 있다. 보다 큰 단위의 공동체적 삶을 위해 일정한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재산가치의 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들을 무조건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치는 분위기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주민들과의 마찰은 행정기관의 권위주의식 발상과 밀실행정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사업계획을 확정하기 전 충분한 여론수렴과 설득작업 없이 어느날 갑자기 계획을 발표하면 반발을 사게 마련이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남발하는 공약도 님비현상을 부채질한다. ‘이유있는 님비’에 대해서는 적정한 보상책이나 인센티브로 조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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