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게 대한항공 비행기하고 김포공항 비행기하고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는 바보같은게…병식인지 하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 게… 식모주제에, 우리 집에 얹혀 사는 식모주제에….
나는 이제 아버지하고 노는 데 더 정신을 팔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주었다는 아버지의 일제 도요타 크라운 차는 검고 반짝반짝했다. 아버지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운전기사에게 운전을 시켰지만 주말이면 손수 운전을 하고 우리들을 데리고 다녔다. 미국 유학 끝무렵 자동차를 팔면서 언제 다시 운전을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차마 키를 뽑기 힘들었다던 아버지는 이제 비참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더 악착스러워진 것 같다고 슬픈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머리에 기름을 발라 이마 뒤로 넘기고 내가 사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사주었다.
아버지는 서구적인 가장이 되려고 결심한 것 같았다. 피아노를 들여놓고 나를 피아노 선생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아침마다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날 때 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오원을 준다고 했다. 나는 그 오원을 벌기 위해 재미도 없는 피아노를 아침마다 두드려 댔고 아버지는 우리집에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것이 흐뭇한 듯 했다. 우리들은 아버지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제일 좋은 옷과 공단 리본이 달린 까만 구두를 신고 기다리고 있다가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오면 온 식구가 저녁을 먹으러 시내로 나갔다.
아버지가 미국에 있었을 때 저녁을 일찍 해 먹고 서부역 뒤 봉래극장에 괴기영화라도 보러가는 날이면 엄마는 물론 봉순이 언니까지 칠보단장을 하고 집을 나서던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처음에 아버지가 놀러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 봉순이 언니는 새옷을 갈아입으며 들떴다. 하지만 어머니는 말했다.
―너까지 가면 집 볼 사람이 없잖니?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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