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 (32)

  • 입력 1998년 6월 2일 18시 56분


―말이라두 해주구 가지 그랬어.

―이 망할 년아, 남자가 움직이는데 기집애한테 허락받구 다니냐? 형님이 곧 색시를 얻어서 내려갈 거니까 가겟자리 하나 봐두라고 했다 왜? 남자는 오만한 얼굴로 엄지와 검지로 담배를 빨아 피우며 재빨리 봉순이 언니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말하는 동안 곧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봉순이 언니는 색시라는 말은 감동스러웠지만 뒷말이 부담스러웠는지 얼굴이 휘익 어두워졌다.

―그나저나 이 꼬마는 오늘 밤 내내 달구 있어야 되는 거냐?

그는 나를 바라보며 다시 봉순이 언니에게 물었다. 봉순이 언니가 난처한 표정으로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봉순이 언니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봉순이 언니를 올려다 보았다. 언니는 그래, 짱아 이쯤에서 네가 빠져 주어야 되겠다, 하는 표정이었다. 이럴 수가, 자려는 나를 데리고 나와서까지 이럴 수가, 하는 배신감 때문에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언니를 노려 본 채로, 그러면 나 울 거야, 큰소리로 울 거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맘대루, 그럼 오늘 밤은 이 꼬마랑 잘해보셔, 이몸은 들어가셔서 잠이나 주무셔야겠다. 아이아. 좋은 밤이다.

세탁소 총각은 여전히 거만한 목소리로 느릿느릿 담배를 던지고는 기지개를 켰다.

―잠깐만, 잠깐만 있어봐, 내가 금새 데려다 놓고 올게 언니는 나와 세탁소 총각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러나 간절하게 말했다.

―그럴래? 그럴려면 그러든지. 그리구 올 때 뭐 시원한 걸루다 하나 사와라, 목 타 죽겠다.

봉순이 언니는 묵묵히 나를 끌었다. 나는 화가났다는 표시로 입을 미어져라 앞으로 내민 채로 그녀를 따라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빨리 와야 돼, 난 기달리는 건 질색이야.

총각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우리 집 앞에서 가만히 대문을 밀고 나를 그 안으로 디밀었다.

―어여 들어가. 언니 금방 댕겨올께

―…….

―어서 들어가래두!

―…….

―짱아, 말들어, 어여! 안 그러면 너 지난번에 오줌 싼거랑 미자네 집에 간 거알지?

봉순이 언니는 두 입을 꽉 다물고 무서운 눈을 해 보였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공지영 글·오명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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