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화제]『해적사회 민주적이었다』

  • 입력 1998년 5월 20일 20시 05분


17, 18세기 대서양을 주름잡던 해적 하면 애꾸눈에 다리는 한 쪽밖에 없으며 포로들을 바다에 밀어넣어 상어밥으로 만드는 것을 즐기는 사악한 인간형을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해적들이 모두 악당은 아니었으며 나름대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 살았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코딩리는 최근 출간한 ‘해적 생활의 낭만과 실체’에서 해적들이 선거를 통해 선장을 선출하고 약탈물을 공평히 분배했으며 약탈할 배를 선택할 때도 다수결로 정했다고 주장했다.

또 해적전문가인 케네스 킨코는 “해적들이 살았던 시대가 해적들보다 더 잔인하고 사악했다”고 지적했다.

해적선장과 일반 선원들은 약탈물을 2대1의 비율로 나눴다. 당시 대부분 상선의 선장과 선원이 무역수익을 15대 1로 분배했던데 비하면 훨씬 민주적이었다.

또 원시적인 형태의 신체장애보험제도도 있어 해적들은 전투에서 팔이나 다리를 잃을 경우 후한 보상을 받았으며 사망할 경우에는 유족들이 대신해서 이를 받았다.

해적사회에는 인종차별도 없었다. 해적집단 구성원의 3분의1 가량은 탈출한 노예출신의 흑인들로 이들은 백인해적들과 동등하게 약탈물을 나눠 가졌으며 투표권도 보장받았다.

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해적집단에서 흑인이 선장으로 선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해적들이 비교적 민주적인 사회를 선호한 이유는 그들 가운데 많은 수가 육지사회의 부조리나 불평등이 싫어 도망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독극물 표시로 사용되는 해골이 그려진 검은 해적기는 실제로는 ‘죽음’이나 ‘공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항복하라는 경고 표시였다는 것도 흥미롭다.

〈김태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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