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 (19)

  • 입력 1998년 5월 20일 07시 37분


내 또래의 그 아이들이 나의 존재를 아주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어떻게든 그들 편에 속하고 싶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케이크를 다 내밀었다. 꽤 많은 양의 케이크였는데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걸 다 먹어치웠다. 그중의 나이가 많은 남자아이가 내게 말했다.

―이거 너희집에 더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머릿속으로 불안이 지나갔다. 케이크가 집안에 더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학교에서 돌아올 언니와 오빠의 몫이었다. 하지만 심심했으므로, 나는 그저 그 아이들과 놀고 싶었고 더 망설이지도 않고 냉큼 집안으로 들어가 그 케이크를 다 가지고 나왔다. 아이들은 케이크 위에 붙어있던 사탕으로 만든 장미송이와 이파리, 게다가 상자 바닥에 붙은 크림까지 다 핥아 먹고도 내게 같이 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빈 케이크 상자를 내버려두고 우르르 다시 몰려갔을 때 나는 그 아이들을 따라 나섰다. 아이들은 힐끔 나를 바라보았을 뿐 언젠가처럼 욕을 하거나 침을 뱉지는 않았다. 이제 드디어 나는 그들에게 끼여들게 된 것이었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곧 어머니에게 언니 오빠의 케이크까지 들고 나가버린 것이 들통이 날 것도 잊어버렸다. 내게도 드디어 함께 놀 친구들이 생긴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기다란 막대기로 자치기를 하는 것이나, 빳빳하게 접은 딱지를 팽소리가 나게 치며 하는 놀이를 구경했다. 가끔 그중의 하나가, 넌 아직도 집에 안갔니,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나도 너희들과 같은 친구라니까, 하는 표정이 잘 전달되도록 애쓰면서 히히 웃었다. 그러자 그중의 하나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말했다.

―치기장난할 사람 여기 붙어라. 여기붙어라.

골목에 흩어져 놀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새로 모여든 아이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바라보았지만, 나는 약간은 머쓱한 기분으로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으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는 그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할 때, 나도 끼어들었다. 그 아이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힐끔 바라보았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엔 내가 게임의 법칙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그래서 제일 먼저 술래가 된 것이려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침 무렵부터 긴 여름 해가 저물도록 나는 내내 술래였다. 돌 올라서기 놀이에서 내가 미처 돌에 올라서지 못한 아이를 잡아내도, 치기 장난에서 내가 아무리 다른 아이들을 따라 잡아 그 아이의 옷을 쳐도 그건 반칙이라고 아이들은 우겼다. 분명히 쳤다고 넌 나한테 잡혔었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내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건 내 착각이겠거니 했고, 다시 술래가 되었을 때 나는 악착같이 달려가 이번에는 나보다 어린 꼬마의 목덜미를 잡고 놓지 않았다.

―자 이번엔 됐지?

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린 꼬마의 목덜미를 꽉 잡고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정말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었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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