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문민정부52]「小統領비리」심판대 오르다(下)

입력 1998-05-18 07:52수정 2009-09-2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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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5월15일 오후8시 대검찰청 11층 특별조사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3과장인 이훈규(李勳圭)검사와 김현철(金賢哲)씨가 철제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이검사가 조사실의 형광등을 껐다. 적막만이 가득했다. 이검사는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두 개의 초에 불을 붙였다. 이 초는 이검사가 직원들에게 특별히 지시해 준비해둔 것이었다.

이검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김현철씨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들었습니다. 신교 구교로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기도하면서 마음을 편히 가집시다.”

이검사는 지그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 밑에서는 조사하는 사람이나 조사받는 사람이나 다 같은 죄인입니다. 이제 우리의 죄를 하느님 앞에서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하여 지금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기도장면은 CCTV를 통해 다른 방에 있던 검사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 이검사는 ‘역사의 기록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수사검사들에게 조사장면을 지켜보도록 했다.

▼ 성경구절 인용 심리전 펼쳐 ▼

이검사의 회고.

“조사에 앞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어준 것은 현철씨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세상과 검찰에 대한 적대감을 지우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극한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철씨의 돌출행동과 묵비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한 사전 대비이기도 했지요. 더 중요한 것은 진실 앞에서 정직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이검사는 기도를 마치고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공동번역 성경책을 폈다. 이검사는 현철씨가 예언자의 수난기를 담은 구약 ‘욥기’를 즐겨 읽는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욥기’ 제33장부터 35장까지를 조용히 읽어내려갔다.

“욥, 나라고 하느님 앞에서 당신과 무엇이 다르겠소.

할 말이 있으면 어서 말해 보시오.

당신이 죄가 없다면야 즐겨 인정해주겠소.

그렇지 못하거든 내 말을 들으시오.(중략)

욥, 당신은 당신이 어디까지나 떳떳하다고 생각하시오?

하느님 앞에서도 죄가 없다는 말씀이오?(중략)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지 않으신다고 해서

엄청난 주장을 펴지만

이미 당신 사건은 그의 앞에 놓여 있다오.”

현철씨도 만만치 않은 고수(高手)였다. 그는 자신도 성경을 읽겠다며 이검사에게 성경책을 달라고 했다. 그가 선택한 곳은 구약 ‘시편’ 143장.

“주여, 내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 주소서.

이 종을 재판에 부치지 말아주소서.

원수들이 이 몸을 따라잡아

이 목숨 땅바닥에 메어치고는

영영 죽어버린 사람처럼

어둡고 깜깜한 곳에 살게 합니다.(중략)

주여,이 곤경에서 이목숨 건져 주소서.

나를 사랑하시오니

이 원수들을 없애주시고

나를 억누르는 자들을 멸하소서.”

현철씨는 검찰청에 오게 된 사실 자체를 억울하게 생각했다. “왜 여기 오게 됐느냐”는 이검사의 질문에 격앙된 표정으로 “내가 잘못한 게 뭐 있습니까”라며 항변했다.

현철씨는 측근인 이성호(李晟豪)전대호건설사장과 김기섭(金己燮)전안기부운영차장에게 자금관리를 맡긴 사실과 김덕영(金德永)두양그룹 회장등 고교동문 기업인들에게서 돈을 받은 사실은 시인했다.

문제는 청탁과 이권개입 부분. 현철씨는 “이권개입을 하거나 대가성이 있는 돈을 받은 적은 결코 없다”며 철저히 부인했다. 그는 검사의 추궁에 맞고함을 치기도 했다.

당시 신문에 참여했던 검사의 설명.

“현철씨는 출두하기 전에 예상 가능한 알선수재나 변호사법 위반죄의 범죄 구성요건에 대해 변호사들에게서 공부하고 온 것 같았습니다. 철저히 부인했거든요. 조금 세게 추궁하면 ‘아니라는데 왜 그러십니까’라며 언성을 높였어요.”

조사는 다음날 오전2시까지 계속됐다. 현철씨는 특별조사실 간이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는 오전8시에 다시 일어나 간단한 체조를 한 뒤 근처 식당에서 배달된 찌개로 식사를 했다. 지치고 허탈한 탓인지 식사 도중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현철씨의 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누그러졌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현철씨에 대한 신문은 이검사와 김준호(金俊鎬) 김경수(金敬洙)검사가 교대로 맡았다.

이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현철씨가 부인하더라도 형사처벌에는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이미 돈을 준 기업인들에게서 “청탁과 함께 돈을 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해둔 상태였다.

5월16일 오후8시. 현철씨가 특조실에 들어간 지 24시간이 지난 시점. 옆방에서는 현철씨의 측근인 김기섭씨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그는 이날 오후5시경 검찰에 출두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당초 김씨를 부른 뒤에 현철씨를 소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검찰은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현철씨를 먼저 소환했다.

▼ 『主君과 함께 행동하겠다』 ▼

이검사의 설명.

“김기섭씨를 나중에 부른 이유는 간단했어요. 삼국지를 보면 전쟁에서 주군(主君)이 항복하면 신하도 따라 합니다. 그러나 주군이 살아 있으면 끝까지 항전하지요. 당시 김씨에 대해서는 이성호씨의 진술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김씨를 먼저 부르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김씨가 부인하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주군’이나 다름없는 현철씨를 먼저 잡기로 한 것입니다.”

이 작전은 적중했다.

수사팀은 이성호씨에게서 “현철이 형을 모시고 김차장과 함께 부부동반 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 때 사모님 옷이 남루해보여 사모님 옷이나 사드리라고 1억5천만원을 준 일이 있다”는 진술을 받아 놓았다.

수사팀은 김씨에게 이씨의 진술을 들이밀었다. 김씨는 본체만체했다. 그는 무려 30시간이 넘도록 자백하지 않고 버텼다.

김씨는 수사팀이 더욱 세차게 다그치자 “총장을 불러달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검사가 맞받았다.

“검찰을 어떻게 아는거요. 조사실에서 총장은 나요.”

“참고인을 이렇게 다룰 수 있습니까.”

“당신은 이제부터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요.”

김씨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자신이 구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김씨를 소환하는데 대해 권력 핵심부와 안기부의 반발은 대단했다. 검찰 고위간부의 증언.

“당시 청와대와 안기부는 현철씨만 구속하면 됐지 왜 정보기관 책임자를 소환하느냐고 항의했습니다. 특히 김씨는 대통령의 자금을 관리한다는 얘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수사팀이 생각해낸 것이 ‘참고인’이라는 핑계였습니다. 다시 말해 김씨가 현철씨 돈을 관리했기 때문에 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검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갔다.

“주군이 들어가는데 당신도 같이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소산(小山·현철씨의 별칭)이 정말 들어갑니까?”

“소산은 이미 무너졌는데 당신 혼자 살려고 거짓말합니까?”

“정말 갑니까?”

“정말 가니까 당신도 떳떳하게 가시오.”

김씨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다 얘기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구속되는 것이 무서워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들어가면 누가 우리 사람들을 뒷바라지할까 하는 것이 걱정돼 그랬습니다. 홍인길(洪仁吉)의원과 김우석(金佑錫)장관 장학로(張學魯)씨 모두 내가 뒤를 봐주어야 하는데…. 그러나 기왕 소산이 들어간다면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현철씨의 조사시간도 어느덧 48시간이 됐다. 수사팀이 “긴급체포하겠다”고 현철씨에게 알렸다.

현철씨는 “혐의가 뭐냐”고 되물었다.

“특가법상 알선수재와 조세포탈입니다.”

“아니 조세포탈이 뭡니까?”

현철씨는 허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실 조세포탈은 수사팀의 비장의 무기였다. 현철씨가 자금출처와 대가성을 부인할 때를 대비해 치밀하게 준비해 두었던 것. 이 부분은 현철씨 사건의 법률적 측면에서의 ‘백미(白眉)’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조세포탈은 이후 1심과 2심 재판에서 그대로 인정됐고 정치인들의 이른바 ‘떡값’을 처벌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속영장은 쉽게 발부됐다.

영장이 집행되기 직전 이검사는 현철씨를 10층 집무실로 불렀다. 현철씨가 격앙된 표정으로 물었다.

“과장님은 처음부터 내가 구속되리라는 걸 아셨죠?”

“현철씨는 신문과 TV도 안봅니까?”

“이거 누가 결정한 겁니까? 혹시 아버지가….”

그의 말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배어 있었다.

이검사는 “그것은 주임검사인 나에 대한 모독입니다. 헌법상 영장청구는 검사가 하는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현철씨는 이검사의 집무실을 나서며 이렇게 물었다.

“검사님, 기자들이 많이 기다릴텐데 마지막으로 기자들에게 뭐라고 말할까요?”

이검사의 대답. “국민과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말하면 좋을 것 같소.”

잠시 후 대검청사 현관. 현철씨가 수십명의 기자 앞에 섰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치소로 향했다.

〈이수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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