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14)

  • 입력 1998년 5월 14일 19시 27분


그 눈빛 때문이었을까, 나는 예전처럼 아버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주발을 마당으로 던지는 일은 이 젊고 잘 생긴 사내의 짓이 아닌 것만 같이 느껴졌고 그래서 대견함과 당혹스러움이 우수처럼 어리고 있는 잘생긴 아버지를 향해 삐죽 웃었다. 아버지는 내 웃음에 좀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았고 무슨 생각이 났는지, 포장마차에서 일어나면서 봉순이 언니의 등 뒤에 있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짱이야, 오늘 기분인데 아빠하구 드라이브할까?

봉순이 언니의 얼굴이 환해졌고 내가 드라이브라는 난생 처음 듣는 그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좁은 길을 이리저리 헤치며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보기만 했지 타보지는 못했던 자동차가 내 앞에 섰고 아버지는 봉순이 언니 등에서 냉큼 나를 안아 올려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는 쿰쿰한 석유냄새가 났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나를 내려놓은 봉순이 언니가 머뭇머뭇 차에 오르는 아버지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래, 봉순이 너도 타자. 아저씨가 오늘은 기분이다.

그때만 해도 좋은 시절이었던 것일까, 아니, 좋다기보다 한가한 시절이라고나 해야 할까, 아버지는 운전사에게 드라이브 좀 합시다, 하고 말했고, 운전사는 알았다는 듯 충정로 쪽으로 난 길로 빠져나와 서소문을 거쳐 남산으로 달렸다.

―아저씨 이 차가 그 새나라입니까?

아버지는 나를 안은 채로 여기가 서소문이다, 여기가 남산이다, 말하다가 운전사에게 물었다. 봉순이 언니는 거의 창에 달라붙은 자세로 홀린 듯 창밖만 보고 있었다.

―예, 새나라예요.

―이게 그 김종필이가 일본에서 들여온 거죠?

―그럼요. 일본애들 차 참 잘 만들죠. 전에 몰던 시발택시하고는 비교가 안돼요.

―운전하시믄 애들하고 먹고 사실만 한가요?

아버지의 질문에 운전사는 백미러로 아버지를 힐끗 바라보다 말했다.

―왜요? 운전 해보시게요?

―글쎄요… 저도 올봄까지 미국에서 자동차를 운전했더랬죠.

아버지는 묻지도 않은 말을 시작했다. 운전사는 핸들 아래에 달린 볼펜같은 기어를 바꾸어 넣으며 묵묵했다.

―포드 60년형이었는데 말이지요, 제일 싼 차였는데도 엄청 컸어요. 튼튼했구, 오년된 중고차였는데 고장 한번 안났다니까요. 유학 끝내고 돌아오면서 차를 파는데 자동차를 정지시키고 키를 뽑는 순간, 차마 그 키를 뽑지를 못하겠습디다. 내가 언제 이런 자동차를 다시 몰아볼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미국까지 다녀오셨군요. 거기 사람들 잘 살지요?

―잘 살죠. 이만한 고기를 아침 저녁으로 먹어요. 집집마다 차 있고, 무엇보다 거기 사람들, 악다구니 쓰고 살지 않아요. 매사가 합리적이죠. 일하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일할 수 있어요. 솔직히 삼년만에 돌아와 보니까, 5·16혁명이 나구 나서 사람들이 더 악다구니가 된 것 같구, 비참합니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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