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재키 브라운」,악남악녀의 「핏빛 삶」

  • 입력 1998년 5월 11일 09시 24분


싸구려 대중영화의 제왕, 키치문화의 전범, 기존 관습과 가치를 전복시키는 독설가 쿠엔틴 타란티노가 돌아왔다. 94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펄프 픽션’이후 4년만에. 흑인관객을 겨냥, 흑인배우를 등장시켜 만든 영화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재키 브라운’을 들고.

유혈이 낭자한 ‘펄프 픽션’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재키 브라운’은 상대적으로 잔잔하다. 살인장면은 딱 네군데뿐. “이건 폭력영화가 아니라 러브스토리다. 그것도 노친네들의 감수성에 딱 알맞은…”이라고 스스로 설명할 만큼.

그러나 범죄 마약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을 섞어가며 해치우는 것은 여전하다. 하층계급의 자극적 대사와 지리멸렬한 삶, 숨가쁜 속도감, 인간본성에 대한 냉소, 광기와 에너지로 특징지워지는‘타란티노이즘’도 고스란히살아있다.

재키 브라운(팜 그리어 분)은 삶에 찌든 40대 스튜어디스다. 무기 밀매꾼 오델(새뮤얼 잭슨)의 검은 돈을 운반해주다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려든다. 생존을 위한 먹이사슬에 뒤엉켜 치밀한 음모와 속임수를 꾸미는 사람들. 문제는 “죽느냐 죽이느냐”인데….

범죄소설 작가 엘모어 레오나드의 95년작 ‘럼 펀치’를 타란티노가 각색 감독했다. 타란티노는 열다섯살 때 슈퍼마켓에서 레오나드의 소설을 훔치면서부터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받았고 “언젠가 그의 소설을 영화화하겠다”며 마음속으로 칼을 갈아왔다. 레오나드에게 직접 “나는 당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고 태어난 사람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 가장 통속적 소설가와 가장 대중적 영화작가의 만남인 셈. 살아있는 인물묘사는 호화 캐스팅의 덕을 보았다. 재키 역의 팜 그리어는 70년대 강한 여성상의 대명사였던 왕년의 여배우. 타란티노는 ‘펄프 픽션’에서 그때만 해도 한물갔다고여기던존트래볼타를 화려하게 재기시켰듯 ‘재키 브라운’에서 20년만에그리어를스크린에불러냈다.

그리어는 “쉽게당하는희생양이아니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여성”이라고 배역을 분석하며 “난 영화계에서 20년이나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지만 변변하게 일어서지도 못했다. 내가 재키같지 못하기 때문에 이 역할은 더욱 매력적”이라고 했다.

‘나쁜 남자’ 오델 역의 새뮤얼 잭슨은 이 영화로 올해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탔다. 로버트 포스터는 올해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로버트 드니로가 멍청한 동료로, 마이클 키튼이 형사로, 브리지트 폰다가 오델의 정부로 나온다. 로버트 드니로와 마이클 키튼은 타란티노와 작업한다는 이유만으로 개런티를 삭감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제작비가 1천2백만달러밖에 안되기 때문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감독 타란티노의 스크린속 장난기를 눈여겨 보는 것도 재미있다.

첫째, 브리지트 폰다가 TV로 보는 영화는 브리지트의 아버지 피터 폰다가 주연한 74년작 ‘더티 메리 크레이지 랠리’다. 극중 부녀상봉?

둘째, 매번 자기작품에 출연했던 타란티노가 이번에는 목소리로 등장한다. 부재중 전화녹음소리. “메시지가 하나 있다….”

셋째, 영화속 로스앤젤레스의 쇼핑몰 ‘델 아모르’는 타란티노가 비디오가게에서 근무하기 전 일했던 곳이라고. 16일 개봉.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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