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日경제의 「준비정신」

  • 입력 1998년 4월 17일 19시 44분


일본인들은 ‘밀짚모자를 겨울에 산다’는 말이 실감날 만큼 ‘대비’에 철저하다. 꼬리를 잘리는 순간 다리를 잘릴 때를 대비한다고나 할까.

이같은 자세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하다.

사실 요즘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는 우울하다. 23년만의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사상 최대의 기업도산으로 상징되는 경기불황과 금융불안 때문이다. 도산한 중소기업 경영자와 해고된 회사원의 자살뉴스는 언론의 단골메뉴다. 언뜻 보면 일본열도가 침몰위기에 놓인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정계 관료 민간의 두뇌들은 벌써 미국의 주가 폭락,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인도네시아 사태 악화를 올해 세계 경제의 3대 폭발요인으로 설정, 연구하고 있다. 대책팀을 만들고 전망과 대책을 담은 보고서를 준비하는 곳도 여럿이다.

“미국증시가 거품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투자때 조심하라”는 전문가들의 투자조언도 자주 들려온다.

이들은 80년대 일본열도를 휩쓴 ‘미국 사들이기 열풍’이 미국 부동산값의 폭락으로 엄청난 손해를 불러온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70년대 두차례의 석유위기와 80년대 엔화가치 폭등의 위기를 일본은 철저한 준비정신으로 이겨냈고 오히려 경쟁력을 높였다.

최근에 만난 한 일본인 경제전문가는 기자에게 “미국증시가 갑자기 붕괴될 때의 대책을 한국에서는 준비하고 있는지요”라고 물어왔다.

“그만큼 당했으니 뭔가 하고 있을 겁니다”고 대답했지만 과연 그럴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해외에서 발생하는 요인이 한달음에 국내 경제를 좌우하는 시대, 일본의 ‘지독한 대비정신’이 새롭게 느껴진다.

권순활<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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