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창혁/외교통상부의 「콧대」

  • 입력 1998년 4월 15일 19시 45분


일본 군대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금’ 지급안이 국무회의에서 보류된 직후 외교통상부가 신경을 곤두세운 대목은 ‘혹시 외통부의 실수로 인한 해프닝처럼 비치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외통부는 국무회의 통과를 전제로 대변인 성명서까지 준비해놨었다.

그래서였을까. 외통부 문봉주(文俸柱)아태국장은 14일 ‘지원금 지급―대일 배상요구 포기 및 사과 요구’라는 정부의 정책엔 변함이 없음을 거듭 강조하면서 “배상문제가 더 이상 한일간에 외교문제화해서는 안된다” “모든 배상문제는 65년 한일청구권협상으로 종료됐다”고 단언했다.

그는 또 “65년 한일협정에 서명까지 했는데 정부가 다시 배상을 요구하면 책임있는 정부라고 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외교통상부의 내부방침이 무엇이든, 또 청와대와 사전협의한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국무회의는 국정의 최고정책결정기구다. 많은 국무위원들이 마치 일본이 책임져야할 배상금을 정부가 대신 지급하는 듯한 ‘지원금’의 성격에 이의를 제기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조차 “배상요구가 주(主)가 아니다”라면서도 ‘지원금’의 성격에 대해 “그렇다면 일본의 책임을 우리가 지는 것입니까”라고 물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뜻을 모르진 않는다. 군대위안부라는 반인도적 문제가 마치 ‘돈(배상)문제’인 것처럼 비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무회의에서 일단 보류됐으면 ‘재고(再考)하고 숙고(熟考)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보류도 또 다른 결정이다. 국무회의의 결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임있는 정부’운운하며 “바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공언하는 것은 오만과 독선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김창혁<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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