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레이더]인종차별주의자 남아공前대통령 피터 보타

  • 입력 1998년 4월 13일 19시 40분


남아프리카의 악명높은 흑백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을 고수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피터 보타 전남아공대통령(82·사진)이 역사의 심판을 받기 위해 마침내 14일 법정에 선다.

보타는 강경한 통치스타일로 인해 ‘거대한 악어’란 별명을 얻으며 아파르트헤이트를 주도했던 강경파. 그는 흑백차별시대에 자행된 인권침해행위를 조사중인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세차례나 출두명령을 내렸으나 묵살하다가 모독행위로 고발되자 결국 굴복했다.

보타는 1978년부터 11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인종차별정책을 시행하면서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89년 뇌일혈로 쓰러진 뒤 권좌에서 물러났다.보타의 뒤를 이은 FW 데클레르크대통령은 국내외의 압력에 굴복해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의 길을 열었으며 이같은 유화정책은 마침내 넬슨 만델라의 흑인정권으로 이어졌다.

진실과 화해위원회는 보타에게 흑인해방운동 진압에 이용됐던 국가안보위원회의 역할에 관한 증언을 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위원회 위원장인 데스몬드 투투주교와 96년 11월 서면답변으로 대신한다는 구두합의를 했다며 증언을 거부해왔다. 그러면서 보타는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백인에 대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며 만델라 대통령측을 비난하고 있다. 그의 지지자들은 위원회가 사면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면서 만델라 정권에 대한 정치공세를 노골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집권시절 흑인판사 임용까지 금지했던 보타가 흑인재판장이 주재하는 심판대에 서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그에 대한 재판은 케이프타운 동쪽 3백85㎞ 지점 관광소도시 조지에서 열린다.

〈정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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