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선체이서」,「구원 여정」그린 로드무비

  • 입력 1998년 4월 7일 08시 04분


18일 국내 개봉될 ‘선체이서’는 범죄로 얼룩진 로스앤젤레스의 뒷골목에서 대자연으로 향해 가는 두 남자의 여정을 그린 ‘로드 무비(Road Movie)’다.

하버드대 의대를 나와 종합병원의 최연소 과장을 눈 앞에 둔 잘 나가는 의사 레이놀즈(우디 해럴슨 분). 반면 레이놀즈를 납치해 탈출하는 블루(존 세다 분)는 암으로 한 달밖에 살지 못하는 열여섯살짜리 살인범이다. 나바호 인디언의 후손인 그는 성스러운 산의 호수에 이르면 병이 치유될 것으로 믿는다.

서로 조금도 닮지 않은 두 사람은 선혈이 낭자한 로스앤젤레스의 범죄지역에서 출발, 사막과 계곡을 지나 눈덮인 산꼭대기에 오른다. 이 상승하는 여정은 레이놀즈의 심경의 변화와도 궤를 같이 한다. 죽어가는 형의 안락사를 도왔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떠올리며 레이놀즈는 구원을 향한 블루의 갈구에 동참하게 된다.

‘선체이서’는 편집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9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칸의 초청은 ‘디어 헌터’ ‘천국의 문’을 만든 치미노 감독에 대한 경의에 불과했던 듯하다.

레이놀즈의 갑작스런 변화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레이놀즈와 블루의 토론, 백인 중산층 여피족의 물신주의와 인디언 문화의 신성함을 대립시킨 구도에서는 감상적인 멜로 드라마로 전락할 위험마저 느껴진다.

치미노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면서도 미국의 이상과 양심의 이면을 파헤쳐온 ‘할리우드의 이방인’이다.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드러내고(디어 헌터) 백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조상의 역사에 메스를 들이댄 뒤(천국의 문) 그는 ‘선체이서’에서 미국의 대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백인들과 소외계층간의 전쟁을 끄집어냈다.

그러나 ‘선체이서’에서 그가 도달한 결론은 전작들과는 사뭇 다르다. 블루가 신성한 산의 호수로 사라지고 레이놀즈가 환호하며 언덕을 구르는 모습을 대비시킨 마지막 장면에서 치미노 감독은 ‘믿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낙관을 경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김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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