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입사빠른 연하 여사원 호칭

  • 입력 1998년 4월 1일 20시 04분


▼ 신참 생각 ▼

박진영(30·교보생명 비서실 사원)

96년 3월 입사했습니다. 처음에 지점에서 수습교육을 받으면서 호칭문제로 조금 고민을 했어요. 군대에 갔다왔고 대학 재학 중에 미국 어학연수도 다녀온 만큼 저보다 나이는 적지만 먼저 입사한 여직원이 많았거든요. 일단 관례에 따라 ‘○○씨’라고 불렀는데 큰 무리는 없었어요.

비서실로 발령을 받아 입사 ‘선배’인 박규진씨와 근무하면서 저보다 나이가 적다고 함부로 대한 적은 없다고 장담합니다. 다만 호칭은 ‘박선배’ 대신 ‘박규진씨’ 또는 ‘규진씨’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입사 2개월 차이라면 사실 ‘동기’로 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별과 무관하게 가치중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존칭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도 ‘미스터 프레지던트’로 부르지 않던가요. 아직까지 사회적 관습 때문에 남자고참에게는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앞으로 연봉제사회가 되고 이직과 전직이 많아지면 선배 후배라는 개념은 점점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형식논리에 따라 ‘선배’ ‘후배’를 꼬치꼬치 따지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고참 생각 ▼

박규진(25·교보생명 비서실 사원)

96년1월 23세에 입사했어요. 빠른 편이었죠. 같은 해 11월 비서실로 발령받아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11개월 전 입사 2개월 ‘후배’인 박진영씨가 비서실에 왔을 때 워낙 동안(童顔)이어서 나이와 무관하게 금방 동기처럼 친해졌죠.

“그건 그렇잖아, 박진영씨”라는 식으로 서로 말투나 호칭도 편한 대로 사용했죠.

그런데 얼마전 말다툼을 약간 벌였어요. 박진영씨가 입사가 조금이라도 빠른 남자직원에게는 ‘선배’라고 부르면서 저를 비롯해 자기보다 먼저 입사한 여직원은 ‘○○씨’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왜 남자선배만 ‘선배’고 여자선배는 ‘씨’냐고 따졌죠.

입사가 두달밖에 늦지 않고 나이도 많은 박진영씨에게 꼭 ‘선배’소리를 듣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대학시절 89학번이면 93학번인 제 동기들 사이에서는 ‘노땅’으로 통하던 까마득한 선배였으니까요.

성별에 따라 호칭을 달리하는 생각의 밑바탕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호칭이 자기보다 회사생활을 오래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라면 성별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붙여야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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