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용서못할 換투기

  • 입력 1998년 3월 17일 20시 02분


일부 사회지도층이 지난해 말 환율폭등에 편승, 환(換)투기를 해 이득을 챙겼다는 충격적인 보도다. 감사원이 은행자료를 통해 10만달러가 넘는 외화예금계좌나 환전사례를 10여건 포착한데 이어 경제부처 고위공무원 은행간부 국립대교수 등 환투기 혐의가 있는 사회지도층 인사 1천5백여명을 대상으로 정밀조사중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삿일이 아니다. 일부 사회지도층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탐욕과 도덕불감증에 허탈감과 함께 깊은 분노를 느낀다.

소위 ‘가진 자’들의 환투기는 지난 연말 달러화가치가 한창 폭등할 때 예상됐고 우려했던 일이다. 기득권층과 ‘가진 자’들이 온 국민이 참여한 금모으기운동을 외면했을 때부터 그런 소문이 나돌았다. 특히 교수채용비리와 관련, 구속된 교수가 집안 장롱에 현찰 5만달러를 숨겨두었다가 적발됐을 때 일부 계층의 환투기를 우려하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도 설마설마했다.

그러나 설마했던 일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보도된 대로라면 온 국민이 졸지에 닥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 일부 ‘가진 자’들은 달러를 사재기했다가 환율이 최고에 달했을 때 되파는 식으로 재산불리기에 열중했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달러사재기가 그동안 외화부족을 더욱 가중시켰을 것을 생각하면 어이없고 가증스럽기만 하다. 나라 경제가 그대로 주저앉을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을 외면한 채 국난(國難)을 자신의 재산불리기의 호기(好機)로 삼은 것은 단순한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일이다.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환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정부의 경제부처 고급공무원들과 시중 및 특수은행의 간부들, 국립대교수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직위 등을 이용, 환율이 급등할 것이란 정보를 미리 입수해 환투기에 악용했을지도 모른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기희생의 모범을 보여야 마땅할 사회지도층의 이같은 환투기는 부동산투기보다 더 질이 나쁘다.

지금 다수의 국민은 IMF관리체제 아래서 온갖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고물가와 대량실업 등으로 서민층이 겪는 고통은 크고 깊다. 이런 때 일부 사회지도층의 환투기 소식은 우리 모두를 맥빠지게 하고 있다. 이번 일로 국난 극복을 위해 필요한 국민적 단합과 일체감이 깨지거나 사회계층별 분열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정당국은 일부 사회지도층의 환투기를 낱낱이 밝혀내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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