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우리아빠 최고]前대교 부사장 강학중씨

  • 입력 1998년 3월 16일 20시 11분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멈출 수 있는가.

불혹의 나이에, 한창 일해야할 때, 새삼스레 가족을 위해, 아니 가족이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해 퇴직한 가장이 있다.

강학중씨(40·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작년까지만 해도 학습지 회사인 ㈜대교 대표이사 부사장이었다. 77년부터 고졸 평사원으로 형님(대교 회장 강영중)을 도와 오늘날 굴지의 학습지 회사를 만든 그였지만 작년 12월말 그만뒀다.

“다른 실직자들과 비교하면 ‘준비된 퇴직’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남들이 생각하듯 다시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재산을 모아놓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년말까지 먹고 사는데 지장없을 만큼은 준비돼 있지요.”

직원들에게는 퇴사이유를 ‘회사가 재도약하기 위해 좀더 능력있는 경영자가 와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 능력이 모자랐다고 생각지 않았지만 ‘더 큰 일 할 사람’으로 착각하지도 않았다는 것.

그에게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인생에서 직장이 모든 것은 아니다. 좀더 본질적인 것을 찾아보자, 어렴풋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퇴직한 후 ‘소중한’ 가족과 처음 벌인 일은 새해초 14박15일간 서울에서 강원 동해까지 2백80㎞를 도보횡단한 것. 새 삶을 시작하는 아빠, 고교에 들어가는 딸 ‘시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 ‘바다’, 이들을 격려하는 엄마. 온 가족이 새출발한다는 의미였다. 가족애도 확인하고 나중에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기르고.

그는 요즘 낮동안 비어있는 딸애 방으로 ‘출근’한다. 생활의 리듬을 위해 오전6시 기상.아침 수영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가 무척 단순하다. 기사나 비서없이 하나하나 손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주 찾고 동사무소 갔다 오는데 반나절, 컴퓨터앞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도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집에 있으면 아이들에게 잔소리할 것이 너무 많아요. 그러나 절제합니다. 아이들이 가뜩이나 어색해 하는데, 아빠가 집에 있는 순간부터 좋아지는 것이 더 많아져야 하지요. 숙제도 봐주고요.”

‘조심스럽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아 퇴직자들에게 한마디 조언.

“가장 큰 자산인 ‘남는 시간’을 아이들과 가정에 투자해 보세요. 세상이 힘들수록 더 빛나는 가치가 가정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가정을 가꾸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십시오.”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백수가 더 바쁘다’고 미안해하며 전화를 받는다. “응, 바다니. 아빠는 밖에서 아는 사람 만나고 있고 엄마는 조금전 책꽂이 사러 시장갔다.…아빠 생각에는 집에서 공부했으면 좋겠는데.…정 그렇다면 돌아올 시간을 메모해 놓고 가렴.”

〈김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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