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소설녹음 자원봉사 상계동 최명선주부

  • 입력 1998년 3월 12일 19시 47분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그 가이없이 넓은 들의 끝과 끝은 눈길이 닿지 않아 마치도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싶었다….”

차분하고 낭랑한 목소리. 눈을 감아도 굽이치는 역사와 애증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일제하의 독립운동과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그려낸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첫 구절이 녹음테이프에서 흘러나온다.

주부 최명선(崔明善·48·서울 노원구 상계동)씨. 지난해 1년 작업끝에 ‘아리랑’ 12권을 84개의 테이프에 녹음했다.

최씨는 85년부터 13년동안 소설 등 각종 책을 테이프에 녹음해오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30년대 전남 남원지방 양반가의 몰락과 재생의지를 그린 최명희의 ‘혼불’ 10권을 10개월동안 60개의 테이프에 녹음했다.

최씨는 현재 서울 강동구 상일동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주부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녹음테이프를 제작, 빌려주는 곳이다. 현재 함께 일하는 주부 녹음봉사단원은 1백80명. 전국 3천9백명의 시각장애인 회원들이 우편으로 테이프를 배달받는다.

최씨의 ‘아리랑’은 1월 대여순위에서 4위를 차지했다. 최씨는 1주일에 한번 이곳에 들러 5,6시간씩 녹음을 한다. 지금까지 총 7백40시간 분량을 녹음했다. 요즘은 정동주의 10권짜리 소설 ‘백정’을 녹음하고 있다.

“주부들은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지요. 이곳에 나오면 봉사도 하고 긴 책도 끝까지 읽게 돼 좋습니다. 테이프를 정말 잘 들었다는 편지를 받을 때는 보람을 느낍니다. 지치지 않고 1년동안 꾸준히 나오기 위해 일부러 장편소설을 고릅니다.”

최씨는 주부들이 일과 보람을 함께 찾을 수 있다며 ‘녹음봉사’를 적극 권했다. 02―427―9111

〈이원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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