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성동기/『분유값이 없어 그만…』

  • 입력 1998년 3월 11일 20시 11분


“딸아이가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어쩔 수 없이….”

10일 공중전화에서 동전 6천1백원을 훔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김동호(金東浩·26·무직·서울 도봉구 창5동)씨. IMF한파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재단사로 일해오던 청바지회사에서 해고된 김씨는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돈을 벌 사람이 자신뿐인데다 지난해 5월 태어난 딸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니 절로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부지런히 문을 두드려봤으나 일자리를 구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가구점에서 짐을 나르며 5일 정도 일한 게 고작이었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가장이 직장을 잃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월세 15만원을 내지 못해 보증금 1백만원을 다 까먹고도 석달치나 밀린 상태. 다행히 어머니와 처남이 간간이 가져다주는 쌀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고 있지만 생후 10개월된 딸에게 분유를 사줄 돈이 없어 분유대신 죽을 끓여 먹여야 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비상금까지 보름전쯤 바닥나자 아내와 딸아이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러던 중 공중전화가 김씨의 눈에 들어왔다. 한푼이 아쉬운 김씨는 10일 오후 9시경 집에서 1백여m가량 떨어진 D식당 앞에 설치된 자급(自給)공중전화기를 떼내 집으로 가져갔다. 공중전화기에서 나온 동전은 고작 6천1백원. ‘이젠 딸에게 분유를 사줄 수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잠시 흐뭇해하던 김씨는 공중전화를 제자리에 갖다놓기 위해 집밖으로 나섰다가 식당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식당주인 진모씨(47·여)는 “이런 딱한 사정을 진작에 알았다면 신고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김씨를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경찰에 신신당부했다.

〈성동기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