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호/「김창준 드림」

  • 입력 1998년 3월 10일 19시 26분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한국계 미국 하원의원 김창준(金昌準)씨가 다행히 예상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의원직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김의원 문제를 소수민족(한국인)에 대한 백인사회의 압박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김의원은 우선 자신의 부주의와 부도덕으로 불행을 자초한 감이 짙다. 우선 외국인이나 외국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서도 받았다. 모금된 수표를 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행사장에서 경비로 써버리는 실수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일방적으로 나무랄 수 있을까. 그가 돈이 없어 곤란을 겪을 때 1백50만 재미(在美)한국인들은 무얼하고 있었을까.

그는 95년 한인들을 상대로 정치자금 모금을 했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소액의 기부금을 부탁한다며 반송봉투까지 넣어 돌렸으나 되돌아온 반송봉투는 별로 없었다. 당시 그는 “별 관계도 없는 백인의원들에게는 거액을 흔쾌히 기부하면서 정작 한국인들의 힘이 되어줄 나에게는 왜 이리 인색한지 모르겠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를 가리켜 흔히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라고 한다. 한인들은 누구나 ‘김창준의 신화’가 2,3세들에게 꿈과 용기를 준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그는 늘 선거자금이 없어 쩔쩔매다가 급기야는 재판정에 섰다.

같은 동양계이지만 일본계 상원의원 다니엘 이노우에(민·하와이)가 선거자금때문에 고전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어깨가 처진 김의원을 격려하는 한인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그래야 자녀들에게 “저기 우리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동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호(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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