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62)

  • 입력 1998년 3월 10일 08시 12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130〉

왕자는 시녀들을 시켜 저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자의 옷을 입히도록 분부했습니다. 왕자의 명령을 받은 시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로 저를 어느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리, 용서해주세요. 저희들은 다만 왕자님의 명령에 따를 뿐이랍니다.”

저의 옷을 벗기기 전에 시녀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체념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녀들은 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그녀들은 마침내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녀들의 비명 소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경탄의 소리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옷을 다 벗기고 보니 저의 몸매는 같은 여자가 보아도 눈이 황홀해질 만큼 아름다웠으니까 말입니다.

“나리께서도 저희들과 마찬가지로 가랑이 사이에 아무것도 달고 태어나지 못하셨군요. 그런데, 나리, 아니, 아씨, 가랑이 사이에 아무것도 달고 계시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건 이제 곧 아시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 왕자님처럼 멋진 물건을 달고 계시는 분이 계시니까요.”

시녀들은 이렇게 지껄여대면서 더없이 아름다운 여자의 옷을 저에게 입혔습니다. 옷을 갈아입힌 뒤에는 저의 머리 모양을 바꾸고, 갖가지 보석으로 저를 치장했습니다. 그렇게 하였으니 저는 그 사이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로 탈바꿈하고 말았습니다.

“오! 그것이 그대의 진짜 모습이었구려.”

왕자는 저를 보자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자는 저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깊이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대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여태껏 나는 본 적이 없소. 알라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것이 남자 동생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할 아내였구려.”

왕자는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다정스레 저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저는 몹시 난처해 하며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왕자님, 비록 제가 여자이기는 하지만, 언제까지고 저는 왕자님의 남동생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사랑하는 부부 사이보다 더 좋은 인간관계가 달리 뭐가 있단 말이오? 부부 사이에는 서로 쾌락을 나눌 수 있고, 자식을 생산해낼 수가 있고, 그리고 삶의 참다운 행복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 거요.”

“그렇지만 정이 떨어지면 남보다 못한 것이 부부 사이랍니다. 쾌락의 순간이 끝나면 서로 돌아 눕는 것이 남녀 사이랍니다. 거기에 비하면 형제간은 영원한 것입니다. 만약 왕자님과 저 사이가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운 사이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예전처럼 저를 남동생으로 생각해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왕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이에 정이 떨어질 리가 없소. 쾌락의 순간이 끝나면 돌아눕는다고 했지만, 쾌락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퍼내고 나면 다시 고여드는 법이오. 게다가 당신처럼 귀엽고 사랑스런 아내를 두고 돌아눕는 사내가 있다면 그것은 목석일 뿐이오.”

왕자의 가슴 속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연정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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