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군수실은 비워놓고

  • 입력 1998년 3월 1일 21시 02분


오는 6월4일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마다 때이른 선거바람이 불고 있다. 자치단체장들이 재선을 노리고 자리를 비운 채 갖가지 편법 사전선거운동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앙정부가 총리인준이 안돼 행정공백을 보이고 있는 판에 지방행정까지도 공백상태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각 지역에서는 ‘구정보고회’ 등의 모임이 경쟁적으로 열리고 있다. 시 군 구 도별로 한번에 수백명에서 수천명씩의 주민을 모아놓고 벌이는 이런 행사에서는 으레 호화판 홍보책자와 유인물이 뿌려지고 대형 멀티큐브까지 동원해 지자체장의 행정 성과를 선전하고 있다.

이른바 ‘업적홍보’라는 것이다. 참석자들에게 식사와 다과 대접이 뒤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가 하면 겨울철인데도 갑자기 마을회관을 지어주거나 도로포장과 보도블록 교체사업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을 대거 동원한 각종 기공식이나 준공식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런 행사들은 이름은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편법적인 사전선거운동이라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지자체장들이 재선을 노리고 표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득표활동은 평소 성실한 직무활동을 통해 하는 것이 정도다. 또 선거운동은 후보등록 후 법정선거운동기간에만 하게 돼 있다. 주민들이 낸 세금이 지자체장들의 표밭갈이에 낭비된다면 이는 그냥 보아넘길 수 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지자체장들이 사전선거운동에 정신이 팔려 업무를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수든 시장이든 자리를 비운 채 표밭에만 정신이 팔려 민원인이나 주민이 지자체장들의 얼굴 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분명한 직무유기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검경은 지자체장들의 이러한 사전선거운동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 ‘구정보고회’ 등의 이름으로 열리는 모임이 사전선거운동이 아니라는 선관위측의 입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단체장들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고 있어 단속이 어려운 것은 이해된다. 그렇다고 누가 봐도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지역주민 역시 내고장살림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엄한 눈으로 감시하고 지자체장들의 사전선거운동을 눈에 띄는 대로 고발해야 한다. 그리고 각종 선심성 사업과 호화판 보고회 등으로 예산을 낭비했거나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을 한 인사들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표로써 심판해야 한다.

법을 어기고 주민 세금을 낭비한 사람에게 다시 내고장 살림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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