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두시간만에 읽는 명화의 수수께끼」

  • 입력 1998년 2월 27일 07시 38분


―배경이 너무 흐리잖아요?

―다빈치가 즐겨 쓰던 ‘공기원근법(空氣遠近法)’이지. 바로 앞에 있는 인물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배경을 안개가 서린 듯 처리하는. 그래서 더욱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상복을 입은 것 같아요.

―그게 또 하나의 수수께끼야. 그리고 배가 볼록해서 임신 중인 것 같고.

―정말요?

―눈과 눈 사이에 임신한 여성에게서만 볼 수 있는 지방질 덩어리가 있다는거지.

―더욱 더 이상하군요. 임신한 여자가 상복을 입고 앉아서 웃고 있다니.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배경의 풍경이야. 다빈치는 물의 흐름을 주목해서 대홍수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지. 여기서도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는 물이 등장해.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우주관, 물이 모든 것을 낳고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우주론적 메시지를 이 그림에 숨겨놓지 않았나 싶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 그림을 놓고 선생과 학생이 주고받는 대화를 엿듣는 사이, 모나리자의 미소를 감싸고 있던 그 신비와 미스터리가 하나씩 둘씩 꺼풀을 벗는다.

현암사에서 펴낸 ‘두시간만에 읽는 명화의 수수께끼’. 일본작가 긴 시로의 진짜 초보를 위한 미술감상 입문서. 서양화의 거장 25명의 명화를 표지(標識) 삼아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꿰뚫는다.

선생과 학생의 대화라는 독특한 형식. 시대와 화가의 삶이 어리는 생생한 작품해석. 저자의 손길에 이끌려 ‘지상(紙上) 회랑’을 거닐면서 새삼스레 서양미술에 관한 한 ‘읽어야 보인다’는 말을 떠올린다.

인상주의 화풍의 기초를 다진 에두아르 마네. 20세기 최대 미술혁명이라는 입체주의를 창시한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생전에 단 한점의 그림도 팔지못하고 가난과 정신착란에 시달리다 37세에 생애를 마감한 빈센트 반 고흐….

저자와 함께, 그들의 대표작 속에 녹아 있는 그 치열한 예술혼과 삶의 궤적을 좇아보자.

마네의 ‘올랭피아’. 손님을 옆 방에서 기다리는, 목에 검은 리본을 두른 매춘부의 나체. 전시장을 욕설과 야유로 물들이고, 심지어 흥분한 관중이 지팡이를 휘둘러 찢어버리려 했던 그림. 마네는 왜 이렇게 저속하고 밉살스러운 ‘암고릴라’를 그렸을까.

―오로지 주목을 받기 위해서야. 그림 자체도 원근감과 입체감을 깡그리 무시했어. 아예 미숙하게 보이려고 기를 쓰는 것처럼.

―왜 이렇게 난폭한 터치를 구사했을까요?

―당시엔 그림이란 ‘진짜 같고 그럴싸해야 한다’고 했지. 하지만 마네는 달랐어. 그림이란 모름지기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바른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여겼지. 외려 진짜같은 그림은 가짜라는 거야.

―결국 마네는 올랭피아를 발가벗겼을 뿐 아니라 그림 그 자체를 발가벗긴 셈이군요….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 르네상스 이후 끊임없이 쌓아온 미적 기준을 일순에 무너뜨린 작품.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한마디로 뒤죽박죽인 그림. 이를 처음 본 동료들은 이렇게 외쳤다. “피카소가 드디어 미쳤구나!”

―이렇게까지 추하게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는 그림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상식조차 파괴했지. 자기식으로 자유롭게 그리기 위해서는 상식이라든가 약속은 방해물에 불과했어. 그는 그림은 일기 같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때 그때의 감정을 일기를 쓰듯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리려면 치졸하게 그릴 필요가 있다는 거지. 치졸한 만큼 더 적나라하거든.

―그래서 어린애 장난같이 되는군요.

―그는 ‘나는 어린애같이 그리는데 반세기가 걸렸다’고 말하기도 했지. 치졸하게 그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반 고흐의 ‘걸상과 파이프’. 그의 그림은 끊임없이 “사랑해” “괴로워” “사랑해 줘”라고 외마디 절규를 토해낸다. 쓸쓸하다 못해 절망으로 가득찬 그림.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고흐는 아마 화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갱과 싸운 다음 스스로 귀를 잘랐다면서요?

―아마 일종의 배신감이겠지. 둘이 함께 살았거든.

―호모였나요?

―글쎄, 정신적으론 어땠는지 모르지만 성적인 관계는 아니었지. 고갱은 화가가 되기 위해 처자식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은 위인이었어. 고흐는 이런 야성에 끌렸는지 모르지.

―그랬군요.

―고흐는 고갱을 위해 팔걸이가 있는 고급걸상을 마련했어. 자신의 것은 그림에 있는 것처럼 엉성한 걸상이었는데 말야. 그는 이 엉성한 걸상을 열두개나 마련해 놓았어. 한푼이 아쉬운 가난뱅이가 말이야.

―열두개씩이나요?

―그렇지. 예수에게는 열두제자가 있었잖아….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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