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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2월 27일 0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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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오빠가 순례의 길을 떠난 뒤 저는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사흘 동안을 울었습니다. 그 너그럽고 자상한 사촌오빠가 저 때문에 깊이 마음의 상처를 입어 속세의 모든 행복을 포기하고 온갖 고생과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길을 스스로 떠났다는 생각을 하자 저는 자책감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마음 속으로 외쳤습니다.
“자비로우신 알라시여! 굽어 살피옵소서! 하지만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제 친오빠를 사랑하고, 친오빠가 아닌 어떤 다른 남자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없게끔 운명지어 주셨으니까요.”
사흘이 지나자 저는 남자 복장으로 변장을 한 채 말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바그다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년 동안 헤어져 있었던 오빠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제가 떠난 오년 동안 바그다드에 혼자 남게 된 저의 쌍둥이 오빠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데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년 전 그날 오빠는 제가 없어진 걸 알고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오빠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서 오직 제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오빠는 마침내 나무꼬챙이처럼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그러한 오빠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용하다는 의사는 다 불러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오빠를 위하여 노예처녀들을 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미목이 수려하고, 몸매가 우아한 처녀들이었습니다만, 그 어떤 처녀도 오빠를 위로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들은 오빠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갖은 교태를 부렸습니다만, 오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노예시장에서 저를 빼닮은 노예소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사비하라고 불렸는데, 눈이며 코며 입이며 어느 것 하나 저를 닮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저하고 동갑이었습니다. 그 소녀를 보자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부르는대로 값을 치른 뒤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소녀를 목욕시키게 하고, 제가 입던 옷을 입히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몸단장을 시키고나니 그녀는 더욱 저를 빼닮아 남이 보면 저의 쌍둥이 자매라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몹시 만족해하며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나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한 날 한 시에 한 어미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남매였단다. 그런데 그것들은 무슨 몹쓸 귀신에 씌었는지, 남매간에 서로 좋아하기를 흡사 애인 사이 같았단다. 그것들을 그냥 두면 끝내 몹쓸 짓을 저질러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얼마 전에 딸년을 카이로에 사는 제 백부 댁으로 보내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아들놈은 제 여동생을 못잊어 깊은 병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내가 너를 산 것은 네가 내 딸년을 대신하여 내 아들놈과 함께 지내주었으면 해서란다. 알라의 도움으로 네가 내 아들놈을 살려내기만 한다면, 훗날 너희들이 나이가 차 성인이 되면, 정식으로 식을 올려 결혼을 시켜주겠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 내 아들놈으로 하여금 제 여동생을 잊어버리게끔 하여주기 바란다.”
이 말을 들은 사비하는 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까닥였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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